돌이켜보면 삶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기로에 서있다. 데이비드가 모아온 삶의 파편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데이비드가 자라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여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크고 엘리너와 함께 늙어가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미리 정해지지 않았고, 이렇게 된 것은 데이비드의 선택 때문이라고, 그 선택들이 인생의 고비고비를 시작 할 수 있게 해준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데이비드 처럼 작은 것도 모으고 모은다. 나의 추억상자 속에도 내 선택들이 내 추억들이 자리잡고 있음에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데이비드가 모은 물건들로 제목이 붙은 이야기들과 처음의 메리 이야기가 읽는 처음에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되어 혼란스러웠는데 읽을수록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목차를 보고 음 정말 시작이 많군 이란 생각이 들었기도 했다. 그건 그런거 같다. 버스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몇 번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탔다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그 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하고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정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 사건도 이러한데 우리 인생을 두고 보면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지 의문 투성이다. 그럴 땐 그냥 모으는 거다. 순서도 상관없다. 모든게 시작이고 과정이니까.. 데이비드의 삶이 그렇게 파란만장하진 않다. 그정도의 역경은 누구나 살면서 겪는 것이지 않나. 그러나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은 소도시에서 언젠가는 자신만의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며 사는 남자. 부인이 우울증이라서 그렇게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열심이 살아보려 노력하고, 때로는 다른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알고 있는 남자의 삶. 삶은 우리에게 하루에도 여러번 인생을 뒤바꿀지도 모르는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게한다. 하나 하나 선택할 때 마다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
데이비드가 모아온 인생의 파편들을 보니 삶을 바꾸는 것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고 있는 사진, 줄리아 아줌마와 공유한 추억의 담배갑, 출생신고서,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엽서들. 어떤 선택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온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회상하며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정해볼 뿐이다. 데이비드의 경우에도 그렇다. 정말 엘리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줄리아 아줌마의 병원에 그날 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읽으면서 데이비드와 엘리너의 관점에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란 생각을 하다보니 역시나 나에 대입해보게 되었다. 나의 삶에서 이런 선택은 잘한걸까? 혹시 아주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데이비드의 나이쯤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삶의 파편들을 모아둘 수 있을까? 또 그것들은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해 줄까?
책 속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왔다갔다 하는데 그곳 사람들의 갈등과 특징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역자후기 덕분에 알게된 어야 라는 말속에 담긴 뉘앙스도 신기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미묘한 갈등도 데이비드와 엘리너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아일랜드와 영국이 가깝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데이비드가 메리를 찾아 떠나지만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상황 때문인 것 같다. 데이비드와 엘리너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아무리 부모자식간, 부부간이라도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 아주 가까운 사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가깝지만은 않은 관계들이 인물들이 나고 자란 곳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 시작이라는 말이 잘 녹아있는 책이었다. 새학기가 아니어도 새 펜과 새 공책을 사면 새로운 시작이듯 시작은 어려운게 아니다. 오히려 설렘을 준다. 시작의 방법은 수도 없이 많고 그게 시작인지 모를 수도 있다. 뭔가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정리가 안된 느낌이다. 이 글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글은 시작했다. 곧 끝 마칠테지만..;;
너무나 인생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원래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버라이어티 하지는 않다는 것, 알고보면 당신의 인생도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모든 선택은 잘 된 것이든 아니든 조금씩은 후회를 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러나 그 후회의 순간도 훗날은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매 순간 순간이 인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