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춘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 알렉스는

인간이 살아가며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이란

악행은 모조리 일삼으며 법인란 법은

교묘하게 피해간다.

 

사춘기의 방황, 반항 정도가 아닌 인간성을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결국 살인죄로 그는 소년원이 아닌

교도소에 수감되고 이곳에서까지 악행을

저지르자 국가에서는 그를 석방해 주는

조건으로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약물실험은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치밀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교도소에 누구하나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부마저도 욕과 독한양주를 일상처럼

즐기지만… 마지막 양심에 따라 신부는 말한다..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어 있어. 착한 일만 하는 작은 기계지…

​라며 변해버린 알렉스를 안타까워한다…

 

무사히 실험을 마치고 범죄예방

효과를 거둔 정부는 성공적인 실험이라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설마 이 약물때문에 내가 아무 악행도

저지르지 못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일상으로 복귀하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리라 다짐한 알렉스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상대방이 자신의 오른쪽 뺨을

때리면 속으로는 그를 죽이고 싶지만

이런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기에

차라리 왼쪽뺨을 내민다..

 

목사의 말처럼 착한 일만 하게 되는

작은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지만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런 사회의 희생양이 된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상으로 돌아온 그는 또다시 악행을

저지르지만 예전과 같은 폭력의 순간에

얻어지는 희열은 얻을 수 없게된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된것이다.

이러한 악행들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그는 올바른 시민이 되기 위한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범죄가 사라지면 인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일까? 개인의 자유의지를 꺾고

인간 내부의 악을 강제로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답다는 것의 정의인가?

 

마지막으로 알렉스의 독백이 씁쓸하다…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람에

태옆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리, 끼리리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쾅쾅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중의 하나같은 거야..

 

내 아들이라, 아들이라, 아들을 낳아

녀석이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의 나이가

들면 이걸 설명해 줄 거야”

 

결국…

선과 악,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의

모든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구분되고 판단되고 느껴진다는것….

그것이다….

 

왜 청춘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진리는 정녕 가르칠 수 없는 것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청춘들…

나도 겪고 지내온 그 시간들…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슬프고

조금 덜 괴로운

그런 청춘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