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조선 03-17세기 대동의 길]을 읽고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한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관련 책이라고 하면, 가장 흔한 것은 국사 교과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왕조 자체가 오랜 시간 지속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왕조의 교체를 시대 구분으로 하여 주요 정치적 사건을 시간 순으로 배열한 후에, 왕조의 경제/사회/문화적 특징을 약술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대 전체를 쉽게 조망할 수 있긴 하나, 반면에 미세한 변화의 흐름에는 주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숲을 보나 그 속의 나무는 보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말하는, 임진왜란의 전과 후의 조선왕조는 다른 왕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라는 견해는, 조선왕조 자체를 근세로 인식하는 현재의 역사 인식 아래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주류적인 견해가 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음 한국사]가 취하는 방식인, 세기 단위의 역사 서술은, 작은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방식의 역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앞선 두 권의 책 – 15세기, 16세기 – 보다 이번 시리즈인 [민음 한국사: 조선 03-17세기 대동의 길(이하, 17세기)]에서 그런 특징이 더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17세기]에서 가장 주요한 사건은, 16세기를 닫는 사건인 임진왜란입니다. 실은 그 모든 변화는 임진왜란 때문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임진왜란이 조선에 던진 변화는 실로 엄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여년동안 누적되어온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임진왜란을 통해서 한 번에 뒤집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임진왜란을 통해서 조선 사회는 변화를 강제당하게 되었고 이후의 시대는 그러한 강제된 변화에 간신히 발맞추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동법과 예송논쟁으로 드러나는 것이 [17세기]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결국 대동법도, 예송논쟁도,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사회가 드러낸 모순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비극인 이유는 그렇게 미봉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동아시아의 중화 질서에 깊이 젖어버려, 명의 멸망 이후에 스스로 중화의 본류를 (내심) 자임하였던 조선의 미봉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7세기]는 대동법과 예송논쟁의 주요한 두 사건의 앞서, 중화 질서의 붕괴인 병자호란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병자호란은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이지만, 조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은 있습니다. 소중화 사상에서 ‘소’라는 글자를 떼어내도록 한 사건일 뿐, 병자호란은 결국 임진왜란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할 사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7세기]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군의 생각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외려, 개인적으로는 대동법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것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대동법과 그를 전후로 한 화폐경제의 본격화는, 지금은 크게 비판받는 ‘자본주의 맹아론’으로의 비약에 이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를 추동한 사건은, 당연하겠지만 임진왜란이라고 보아야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자,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17세기]의 장점은, 붕당의 역사를, 일목요연하지는 않지만, 알기 쉽게 세세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붕당정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려면 전문적인 책을 들춰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민음 한국사]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시대 속에서 드러난 주요한 키워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역사 서술을 하고 있는 탓에, 많은 역사 개설서들이 간과하는 ‘붕당정치’의 흐름을 잘 포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17세기의 조선 역사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가 ‘병자호란’과 ‘대동법(과 화폐경제)’, 그리고 ‘붕당정치’인가는 관점에 따른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주제사의 역사 서술이, 현대사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세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것 자체에는 의미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 세기말에 일어난 – 1400년 태종 즉위, 1592~1598년 임진왜란, 1800년 정조 승하, 1910년 경술국치 등 – 까닭에 하나의 세기를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 이러한 키워드 중심의 역사 서술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음 한국사]는 키워드를 따라가지만, 그 가운데 길을 잃지 않도록 책의 중간중간에 다양한 주변 자료 및 관련 자료를 보기 좋게 넣어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숲에서 길을 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강의 역사적 사건을 꿰고 있는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대의 주요한 흐름을 일별하는데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책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