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조선 01-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을 읽고

민음사에서 출간한 역사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느낌은 ‘민음사가?’였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책들을 내고 있다고는 해도… 민음사까지 역사책을 낼 필요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죠. 민음사라면, 우리나라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만큼 꽤나 넓은 출판활동을 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처음에의 느낌은, 마치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든 듯 싶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죠.

조금 세세히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저자를 ‘고용’하였다기보다는, ‘섭외’하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그런 형태의 역사서적 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출간은 하지만 개입은 없는. 아마 처음에 가졌던 막연한 거부감은, 저자 주도의 역사서적이 아닌 출판사 주도의 역사서적이 아닌가라는 의심, 그리고 과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역사적 안목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조금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니, 집필 집단이 있어서 그 곳에서 집필이 이루어지고, 민음사는 출간 쪽에만 신경을 쓰는 듯해서, 거부감이나 의심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마침 역사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책의 느낌은, 논문집을 모아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각 전문 분야를 가진 집필진이 모여서, 자신들의 전문(관심) 분야에 대해서 세세하게 모아놓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 관련 서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국사 교과서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우선 시대별로 – 조선 전기, 조선 후기 등 – 정치적 사건을 나열한 후에, 경제/사회/문화적인 변화를 뭉뚱그려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5세기]는 우선 시대를 세기별로 나누고 있습니다. 대표 저자의 말대로, 21세기에 걸맞는 평등을 기치로 한 새로운 사관의 정립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존에 없었던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른 역사관의 서술은, 분절적인 느낌이 강하게 온다는 데에서 조금 생경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지만, 시대 안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밀도있는 서술에는 꽤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단은 더 두고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로 다루는 사건/현상은,

태종의 왕권 강화

세종의 업적 중, 예악, 과학 기구, 훈민정음에 관련된 것

계유정난

경국대전

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현상을 중심으로하여, 조선 시대가 점차로 왕권을 강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어 언급하여 봅니다.

민주주의 사태의 국민들이 왕정 시대의 지도자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기묘하다. 민주적 원리에 따라 수천만 명 중에서 뽑힌 지도자들보다 몇 명의 아들 중에서 선택된 세습 군주의 업적이 두드러진다면 민주주의 시대의 주권자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왕정 시대의 유일한 주권자였던 군주가 최대한으로 발휘한 역량을 존경해야 하는가, 질투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세종이 현대 한국인의 멘토로 군림하는 현상은 정작 세종의 시대를 역사적으로 보낸 데 어려움을 준다. (100~101쪽)

아마도 시리즈를 시대순으로 출간하지 않고, 15세기를 처음을 엮은 것에는, 세종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비교불가능한 군주를 제시하는 것에 대한 유혹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종대왕 시절의 왕권 강화는 애민 정신과 함께였다고 할 수 있고, 그러한 애민 정신에 대한 서술이 세종대왕의 업적 속에 내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필이면 1400년에 태종이 즉위한다는 부분도, 왕권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선 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15세기라는 시대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국사 교과서나, 여러 통사류의 역사 관련 서적보다는, 초점을 분명하게 하여 세세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동시대의 세계 다른 나라 – 특히 중국 – 의 현상과 사건과 비교하여 세계사적인 흐름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부분에도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그래프, 사진, 도표 등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많이 주고 있다는 점에도 특징을 둘 수 있습니다. 종이질도 훌륭합니다. 반면에 텍스트의 양은 적다고 할 수 있죠. 책을 사면 부록으로 따라오는 작은 핸드북은, 책의 텍스트 부분만 따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읽을 양은 그만큼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통사류의 역사책을 많이 접해본 분들에게는 유용한 부분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보는데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게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16세기]도 사 두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