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 Scripta Manet 조상들 말씀 그른 거 하나도 없어

출간일 1999년 10월 15일

Litera scripta manet…. 글로 쓴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라틴어 경구가 소설책 <농담> 보다 더 적절한 사례는 없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곧 자빠질 것도 같은 아가씨가 도무지 곁을 주지 않자 주인공 루트빅은 엽서에다가 (그것도! 엽서에다 말이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농담 하나를 적어 보내고…. 인생 조진다.

현대시대의 거장 가운데 한 명인 밀란 쿤데라가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체제에 이 소설로 또한 “농담” 한 마디를 야물게 후려 갈긴다. 이 몇 마디의 피할 수 없는 증거로 인해 루드빅은 뼈 속까지 트로츠키 주의자로 개전의 정이 전혀 없는 반동으로 낙인 찍혀 대학에서 퇴학 당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반동들의 집단인 수형자 군대에 배속받아 군인은 군인이거늘 총 대신 삽과 곡괭이를 높이 들고 지하 수백 미터 아래 탄광에서 석탄을 캐러 내려가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곡괭이를 든 엘리트. 이 아니 비극일손가.

하지만 이렇게 비틀어 꼬기만 한다면 누가 있어 쿤데라를 시대의 거장이라 칭하겠는가. 세월이 흐르고 루드빅의 모서리 역시 닳고 닳아 어느새 두루뭉수리… 오랜 동안 증오하던 자들, 자기 신세를 조지게 한 원수로 여기던 자들 혹은 계급들과 비록 흔쾌하지는 않지만 화해 비슷하게 하는 루드빅은 또 어떤 은유인가. 같은 조국에서 같은 시대에 같은 젊음을 낭비하던 자들과의 화해는 그 시대와의 화해와 어떻게 다른가? 다르지 않다, 는 것이 내 생각.

그러면…. 나는 왜 아직 그들과 화해하지 않는 거디냐.

여기자 또는 여자 아나운서와의 에로틱하다가 결국 포복절도하고마는 장면은 생략한다. 이 장면 읽다가 늙어갈수록 사나와지는 마누라한테 미친놈이란 소리 들었다. 궁금하시지? 사서 읽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