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 옮김 이동렬
출간일 2004년 1월 15일

소싯적에 부모가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책꽂이에 좌악 꽂아놓으셨었다. 세로 두 줄로 되어 있는 작은 글씨의 책들. 독서 깨나 즐기시던 부친은 집에 오시면 둘 중에 하나를 하셨다. 술을 자시든지 책을 보시든지. 근데 아버지 형제가 다섯분이라 조카가 무지 많았고 그 조카들이 오면 아버지는 눈에 불을 켜고 한 가지를 엄하게 금하셨다. 바로 책을 빌려 가는 것. 특히 말 없이 빌려 가는 것. 거 참 신기하지. 그 많은 책 가운데 딱 한 권이 없어졌는데 아버지는 그걸 단박에 눈치를 채신 거였다. 바로 스탕달의 <적과 흑>.
“골라도 참. 하필이면 제일 좋은 걸 가져갔구만.”
그리고 얼마 후, 명 짧은 부친은 결국 그 책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시지 못하셨으며, 많고 많은 책들은 풍비박산.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단 한 권도 남아있지 않고, 나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현대문학전집 최인훈과 장용학 이렇게 두 권 만 보관하고 있다.
하여간 그래서 수년간 난 스탕달을 세계최고의 문호, <적과 흑>을 세계 최고의 소설작품으로 알고 십여년을 살았다. 한 스무살 쯤 됐을 때 드디어 <적과 흑>을 읽었으나, 기대가 너무 컸는지 결국 완독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제 다시 <적과 흑>을 손에 잡게 되었으며, 왜 내 아버지께서 이 책을 좋다고 하셨는지 단박에 알았다. 그러나 난 이미 당시의 내 아버지보다 열 살 이상 더 나이가 들었다.

이런 코메디는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품격높은 명품 코메디. 이 결론은 내 부친이 남긴 말씀하고 관계없이 오롯한 내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