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조금도 마르케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거의) 없는 것처럼, 없다. 매우 학구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마저도 라틴 아메리카의 무수한 작가들에 대하여 독하게 혀를 사용했으면서도 보르헤스의 단편소설들에 대해선 매우 독특한 찬가를 쏟아낸다. (리카르도 피글리아, <인공호흡> 참조.)
짧은 단편 하나면 충분할 것을 500 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써대는 작가는 우습다고 일갈한 보르헤스. 그 자신이 젊은 시절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거의 실명상태에 가까워 장편소설을 쓰지 못했다는데, 암만해도 자신의 불운을 그렇게 교묘하게 비아냥거린 듯싶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여태까지 내가 상찬했던 많은 작품들. 난 그걸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결코 <돈 끼호테>의 구석구석에 숨은 비유와 유머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으며, 독일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파우스트>를 우습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진정한 모습보다 상당히 근사하게 포장된 문학상품 아닌가 의심한다.
혹은 작가가 평생 웅변했듯, 보통의 소설가들은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호소하려면 500쪽이 넘는 분량이 필요했던 것을, 아무리 세봐도 원고지 50장 정도의 짧은 글에 다 쏟아붓기 위해 보르헤스는 천재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학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궁금하다. 천성이 속물인 나는 이 <픽션들>을, 그리고 보르헤스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을 리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고, 무식이 탄로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네미럴 것. 내가 이 문학상품의 소비자이니까,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보르헤스는 평생 에세이 만 쓰다가 죽을 것이지 왜 소설까지 썼는가. 그렇다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텐데. 이 위대한 아몰랑 주의 소설의 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