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소설의 어머니. 이 말 하나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문제는 읽는 나도 그렇게 느꼈는가 하는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우겨도 내가 아니면 아닌 건데, 이 작품 <마담 보바리>로 말할 거 같으면, 진짜 사실주의의 어머니다. 동의하고 말고가 없다. 당연한 거니까.

근데 젊어서는 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까? 20대 초반에 한 번, 30대에도 한 번 읽어보려 했었지만 아쉽게도 참으로 이 책 속의 것들이 너무 촌스러워 때려 치웠었다. 마지막 시도 후 20년이 흘러 ‘사실상 최종적’으로 책을 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위대한 작품을 청년시절에는 읽어내지 못했을까, 하고. 암만해도 난 유별나게 겉멋이 들었었다고 고백하는 편이 좋겠다.

내용? 위에서 말했듯이 촌스럽다. 바람난 아름다운 의사 부인 얘기다. 당연히 시절이 19세기니까 파멸로 끝난다. 근데 왜 이 소설이 명작의 반열에서 내려올 줄 모를까. 여기에 대해서 우린 숙고할 점이 있지나 않을까? 바로 이것이 플로베르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점이다.

뻔하고 통속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얘기를 각 장면마다 기묘하며 적절하고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감탄해마지않게 만들어가는 각 개인들의 움직임, 생각, 행동 하나하나, 그것으로 의미하는 것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딱, 꼭 맞아떨어지게 쓰여져 따라 읽어가기에도 기가 죽을 형편이다.

 

이 빌어먹을 매독쟁이 영감. 플로베르. 조금 더 오래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