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닮은 한 여인의 질긴 생명력

너대니얼 호손이 19세기의 딱 한 가운데, 185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한 마디로, 한 번 실수로 인생 조진 여자 이야기다. 무대가 17세기 보스턴 근교니까 영국 청교도 혁명 전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아메리카로 피해간 사람들이 살았던 곳인데…. 그럼 오히려 유럽 본토보다 훨씬 더 교조적인 청교도 정신(혹은 유령)이 창궐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이 간다. 그곳에서 남편이 멀리 간 한 유부녀가 아이를 배고 낳았으니 사단이 날 수밖에 없고, 종교적 유령 혹은 종교적 집단 히스테리는 아이 엄마 헤스터의 가슴팍에다, 문화적으로 인도적으로 열등한 놈들, 아이 먹을 젖가슴 위에다 간통이라고 적어놓게 만들어버리는 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 생각으론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호손이 작품을 발표한 1850년이라면 그 엄정했던, 그리고 옹졸했던 청교도의 후예들은 가슴 절절하게 동의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현재의 시각이 아닌 조선 철종 즉위 초기로 시각을 옮겼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딤스데일, 칠링워스와 더불어 헤스터가 만들어가는 이 재미난 이야기가 너무도 식상하게 끝나는 점이 아쉬웠다. (혹시 결말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그 식상이 어떤 식상인지는 여기에 쓸 수 없다!)

 

혹시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독자가 있으려나?

난 아니었다. <주홍글자> 속엔 아직은 페미니즘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읽었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온전하게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나는 그저 땅을 닮은 한 여자, 질긴 생명력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그런 여자를 봤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도 내 마음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