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던 것이 어머니가 읽다 방바닥에 내려 놓으신 소설책의 첫 장을 넘기던 박박머리의 중학교 1학년 때였었나 그랬다. 그 후 <설국>을 여러번 손에 들었지만 이 첫 문장 너머로 서너 쪽밖에는 더 넘어가지 못했다. 물론 젊었던 시절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이제 더 이상 젊은 거 같지는 않다, 썅!)

이유없이 보기싫은, 더 느낌이 오게 쓰자면, “뵈기싫은” 사람들이 누구한테나 꼭 한 명쯤은 있는데 나한테 소설가로 바로 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렇다. 말 그대로 이유없이 재수없는 인간. 꼭 미워해야 마땅하겠으나 어디 미워할 구석도 없고 미워할 이유를 두가지도 댈 수 없는, 그래서 더 재수없는 인간. 다시 말함으로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그냥 미워하고 싶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도 그렇다. 작가가 미우니 그의 대표작인 이 <설국>도 한 번 대차게 꼬집어 비틀고 그것도 모자라면 원심분리기에 넣어 팽팽 돌리고 싶은 작품.

 

아…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다.

내용이래봐야 하나도 별스럽지 않은 거, 중년의 속물이자 유복한 부르주아 일본 남자 한 놈이 북쪽 눈 많이 내리는 온천지역으로 오입여행하는 걸 썼을 뿐이다. 내 머리 속에 번쩍 떠오르는 또 하나의 대단하고 대단한 단편 작품 하나. 김승옥의 <무진기행>. 난 <무진기행>을 무진장 좋아할 뿐더러 숭배하고 찬송하며 언젠가 하늘의 하나 별이 되리라 예언한다. 벌써 별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비루한 얘기지만 이 <무진기행>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듯이…. 난 <설국>에 대해서 결국 찍소리 한 번 하지 못하리란 것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뻔한 얘기에다 신파에다가 통속적이기까지 한 별 볼일 없는 스토리를 이렇게 찬란하게 만든 건,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이다. 이 <설국>이란 짧은 장편, 또는 중편을 통해 비록 한국어로 번역한 텍스트이나마, 이리도 심상을 적시게 만들 수 있는 힘. 어쩔 수 없이 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 가와바타 야스나리, 잘 났다, 잘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