넨장맞을. “거미여인.” 얼마나 관능적인 팜므파탈이란 말인가. 사마귀처럼 교미 후에 수컷 거미를 산채로 우적우적 씹어먹고 (사실은 용해제를 투여해 녹여서 죽처럼 만든 다음 빨대로 빨아 먹기는 하지만),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하면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첫번째 양식으로 바치는 거미의 암컷, 그 숭고한 생식의 희생.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김수영의 시 <거미>에서 차용. 김수영 전집, 민음사)의 그 위대한 고독.

난 이런 내용이길 기대했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마누엘 푸익은 그의 또다른 흥미있는 작품 <천사의 음부>로 가히 엽기적인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그 속에서 한 가닥 희망으로만, 아니면 미친 사람의 기대 또는 환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천사를 음울하게 그림으로써 절묘하게 남미의 우울을 보여주거나 조롱한 적이 있는데, 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또 거미여인 몰리나와, 그와 감옥의 한 방에서 지내는 정치범 발렌틴 커플, 이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또한 서로의 인식이 천천히 바뀌는 그리하여, 그래 넨장맞을 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한편으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또 한 편으로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런 걸 모두 합쳐 인간적인 관점으로 적어놓고 있다.

아, 줄거리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로 책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이 <거미여인의 키스>의 리뷰글을 쓰면서 절절하게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말이야,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전 세계의 영화 문학 공연문화 판들이 책의 진짜 모습에 비해 너무 과대포장하고 있는 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