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언제나 조그만 틈으로 들어온다.

  • 이 소설은 2004년에 출간된 단편집 <불안사회>에 포함되어 있었다. 2010년에 따로 떼어 내 재출간한 작품이다. 단편집에 실린 것이 재출간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다. 132쪽의 중편소설 정도랄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드라큘라의 현대 버전이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좀더 심오한 뭔가가 있다. 죽음과 영생, 자식에 대한 집착, 두려움, 공포 등이 깔려 있다. 물론 희망은 사라져 있다.

     

    공포소설의 공식처럼 시작한다. 사장의 의뢰로 이상한 일을 한다. 블라드라는 사장 친구의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이다. 조건이 상당히 이상하다. 집의 창문을 모두 막아달라고 한다. 빛이 차단된 집과 블라드란 이름에서 이미 그 정체를 짐작하게 된다. 길지 않은 중편이니 이 정체는 바로 밝혀진다. 하지만 공포소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흔한 뱀파이어와의 대결이 아니다. 아니 대결이 되지도 않는다. 단지 나바로의 무력한 저항과 가족에 대한 사랑만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집착이 빛을 발한다. 동시에 공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희망이 사라진다.

     

    이 소설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나바로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활동적인 소년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엄마는 바닷물을 다 퍼내어서라도 아들을 찾고 싶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게 판단한다. 이 판단이 이성적으로 옳지만 엄마에게는 가슴 한 켠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 부부에게는 또 딸이 한 명 있다. 바로 여기서 부부는 충돌한다. 물론 여기에는 블라드의 마력이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아들을 잃은 엄마의 불안감과 공포다. 언제 딸 마그달레나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 말이다. 이성은 아주 자주 감성에 의해 무너진다.

     

    기존 드라큘라 소설이 가진 설정을 빌려 왔다. 하지만 여기에 변화가 있다. 죽지 못하는 악마인 뱀파이어의 지배자에 대한 것이다. 블라드를 영생으로 이끈 존재다. 이 영생은 삶의 힘을 잃어가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비틀린 모성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모든 힘의 근원으로 어린 소녀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무섭고 파괴적이고 두려운 존재인 블라도도 마찬가지다. 블라드의 과거에 대비되는 존재가 어린 소녀인 것은 순수와 희망을 의미한다. 그 소녀가 욕망에 사로잡히면 희망은 조용히 사라진다. 이 소설은 바로 욕망과 탐욕에 의해 희망이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표면적으로 안정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부부 사이도 틈은 늘 존재한다. 그 틈은 언제나 악이 노리는 공간이다. 이 틈 사이로 파고든 악은 둘만의 관계를 깨트리고 단순히 덮어두었던 것을 표면 위로 불러낸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다. 유혹은 은밀한 그림자처럼 아내를 삼키고 남편은 그 두려운 현실과 미래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냥 뱀파이어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는데 언제나 선택은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대가는 분명하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멈춘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