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충돌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연령 15~60세 | 출간일 2013년 7월 19일

판타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미지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 든 생각은 뭐지? 하는 의문이었다. 숲의 시작이란 제목에서 환상소설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끄집어낸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한 소년이 실제 생활이 아닌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순간 게임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던전, 레벨, 퀘스트, 게임오버 등의 단어가 이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차분하게 읽으면서 이것이 단지 현수가 삶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모두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가장 큰 화자이자 자신의 존재가 공적 기록 상에서 소멸된 현수. 현수의 누나이자 힘겨운 삶을 살아온 누나 미수. 미수의 연인이었고 가족이 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윤. 이 세 명이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삶은 성공한 사람들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르다. 아니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너무 다르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거나 그냥 막연하게 보아왔던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공감한다. 물론 그것이 피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현실이다.

 

가짜이자 다른 사람의 이름과 카드 등으로 살아가는 현수는 어릴 때 엄마의 사채빚 때문에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보상금으로 그 빚을 갚기 위해서다. 사채업자 손에 자란 그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삶을 살아가지 못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조직이 깨진 후 그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다행이라면 자식을 잃은 보스의 도움을 조금 받는다는 것 정도랄까. 이 어린 소년이 자신의 삶을 기억해내고 누나를 찾아낸 후 옆에 살면서 조그만 도움을 주는 것은 혈육의 정도 있겠지만 사라진 자신의 삶을 복원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아련한 아픔과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수는 삼촌집에서 역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친척의 폭력과 무시 속에서 살다가 독립했다. 배경도 돈도 없는 소녀가 현실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한때는 나레이터 모델 일도 했다. 그러다 현재 얻은 직업이 빌딩 안내원이다. 방문객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일이다. 이 일에 그 어떤 열정도 없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기계적일 뿐이다. 그녀에게 삶은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것 정도랄까. 단지 같은 빌딩에 근무하는 보안요원 윤과의 연애기간이 삶의 숨통을 틔워준 시간이랄 수 있을까. 너무나도 협소한 인간관계 속에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동생 현수의 조그마한 미션들을 오해하기에 충분하다.

 

윤은 미수의 연인이었고 현재 부모의 병과 빚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잊고 살아간다. 무심코 지나가는 수많은 빌딩 보안요원 중 하나인데 그의 삶은 짙은 후회와 열등감으로 가득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맞이한 가계 파산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을 이끈다. 이 때문에 미수가 그의 대학 졸업 증명서를 발견했을 때나 동아리 동료를 만났을 때 달아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학자금 대출과 부모의 빚 때문에 저당잡힌 인생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내려앉아 있다. 어쩌면 윤의 모습은 이 땅의 수많은 대졸자들의 현재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도피하고 왜곡하고 게임으로 생각하는 현수의 행동을 윤의 것으로 착각하는 미수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윤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잊고 있던 동생을 찾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일이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정체되어 있던 삶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 속에 꿈이나 환상처럼 등장하는 두 영상은 과연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실제 미래 모습인지 아니면 두 인물의 상상이 만들어낸 또 다른 미래 모습인지 헷갈린다. 단지 이 두 남매의 만남이 새로운 미래로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