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재미있는 책. 이탈로 칼비노는 예전부터 이름만 잔뜩 듣고 정작 책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던 그 작가였는데, 늦게나마 읽어본 소감은, 그동안 바보짓을 했구나, 였다.

이건, 물론 좋은 소설치고 어느 것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타당한 감상이 적어도 삼백개 정도는 나올 수 있을 것같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풀어놓을 구라를 (언제나처럼) 믿을 필요 하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난 천성이 가비야워서 인터넷에서 찾아 읽을 수 있는 그럴 듯하게 무게잡는 그런 감상들을 느끼기 보다 그냥 칼비노가 써놓은대로 곧이 곧대로 읽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커다랗고 징그러운 쥐의 간으로 요리를 즐겨하는 누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달팽이 요리를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결국 나무 위로 올라가 다신 땅에 발을 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남작댁 맏아들 이야기를, 1) 시대에 뒤진 권위적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거나 2) 높은 곳으로 올라가 인간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한 발 물러서야 한다거나, 3) 계몽주의, 상식, 과학, 개인의 자유와 평의 대두라고 읽고싶지 않다는 말이다. 위의 1번부터 3번까지는 뇌 속에 든 것 많은 작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내가 따라 했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난 그냥 열 두살 먹은 소년이 나무 위로 올라가 평생 거기서 사는 얘기라고 읽었다. 그럼 안 돼?

서양의 소년들이 흔히 갖는 환상 가운데 하나가 나무 위의 집이란 건 다 아는 얘기. 그런데 누구 하나가 있어서 소년 시절의 동경을 정말로 평생을 바쳐 이뤘다는데 뭐 별다른 해석이 필요한가. 이 아니 멋진 우화적 소설이란 말이냐. 그래, 그래. 우화라는 건 언제나 해석이 뒤따라야 하고 교훈을 줄 필요가 있겠지. 근데 해석하기 싫고 더군다나 그 빌어먹을 교훈은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면 어쩔 건데? 언제까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어떤 노예의 뜻을 좇아야 하는 거야?

 

책은, 더군다나 문학작품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읽는 사람의 것이다. 이 중의적인 대단히 재미있는 작가 이탈로 칼바노를 앞으로 좀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