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향한 공화제적 시선

본문만 2,500 쪽이 넘는 길고 긴, 그러나 동서에 떠르르 그 유명세를 날렸고, 날리고 있고, 앞으로도 날릴 빅토르 위고의, 더 나아가 위대한 프랑스 19세기 소설문학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 이기는 한데, 이거 낭만적 계몽주의 소설이냐, 계몽적 낭만주의 소설이냐라는 논점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즉 이런 논의는 하기 싫을뿐더러 앞으로도 이딴 거 가지고 침 튀기 싫다는 말씀으로,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하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영화로 만들거나 뮤지컬, 또는 오페라로 공연했다하면 정말 확실하게 대박칠 수 있는 스토리 라인, 숨이 넘어가더라도 주인공은 관객들 눈에서 눈물을 확실하게 쏙 빼놓을 때까지, 죽을똥말똥, 할 말을 다 하기 전엔 절대로 숨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립했고, 말리에르 신부한테 은촛대를 기증받은 다음부터 갑자기 정말 부처님 가운데토막이 된 장 발장, 예전 JTBC 주말 드라마 <맏이>에서 아역배우 출신 윤유선이 연기한 순택 엄마 반촌댁이 “서양에도 장씨가 있는가보구나” 했던 그 장 발장은 가히 프랑스의 대문호가 만들어낸 주인공답게 정말 무결점의 숫총각, 기운센 천하장사, 60만 프랑의 부르주아, 빈한하고 가여운 사람들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흰 날개를 숨긴 천사, 기술적 변혁을 가져와 한 도시를 통째로 부유하게 만든 사업가에다가,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스스로 자기 팔을 지지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까지, 아이고 엄마, 나 좀 이렇게 만들어놓지 어쩌자고 가진 거 없고 공부도 못하고 게으름까지 덤으로 보탠 찌질이로 낳아놨소, 하소연이라도 한 판 때리고 싶게 만들었으며, 장씨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고 기꺼이 스토리 밖으로 사라진 엑스트라 말리에르 신부를 소개하기 위해, 극의 주요 갈등상황을 초래하는 마리우스와 테나르디에의 악연에 개연성을 주려 워털루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각각 1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상세한 묘사를 서슴지 않은 것은 물론, 1789년 대혁명에 대한 위고 스스로의 역사적 관점과 역사인식을 주장하기 위해 또다시 100 페이지 가량을 두어번 나누어, 그러니까 아예 책 한 권 가량의 분량을 할애한 그야말로 경이적인 설레발을 과시함과 동시에, 위고 자신의 말대로 그 넓은 파리 시내에서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철천지 원수가 돼버린 장 발장과 테나르디에, 마리우스가 어찌도 그리 자주 우.연.히. 만나 서로가 서로한테 더럽게 꼬인 인생을 선사하기 위하여 그토록 애달캐달하게 되는지, 하, 세 사람 뿐만 아니라 테나르디에의 아들 하나, 큰 딸까지 얽히고 설켜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게 인연이라 하지만 아름다운 인연도 이 정도면 징글징글하다싶을 그런 인연의 우연한 충돌을 과감하게 저질러 버려도 감히 누가 있어 그걸 위고한테, 다른 넘도 아니고 위고한테 까탈을 부릴 수도 없는 거, 이런 걸 다 모아모아도, 여태까지 솔직했지만 이제부턴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거 다 모아도 위고, 부르주아에다가 지식인에다가 이미 충분한 명망가였던 위고가 프랑스 인민들을 바라보는, 어떤 의미에서 내려다보는 이라고도 쓰고 싶을 정도이기도 하건만, 그 인민을 향한 공화제적인 시선,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딱 섭씨 37.5도의 체온적 시선에 대하여 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울러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 멋있고 찬란하고 앞으로 자자손손 이어져야 하는 이 위대한 텍스트를 우리 말로 참 맛있게 번역해놓은 정기수 선생, 다만 번역자의 이름이 정기수가 아니라 장기수였다면 정말 장 발장하고 여러모로 딱 맞아떨어질텐데하는 아쉬움만 빼놓으면 그의 노고에 기립박수를, 나는, 갈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