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관념적이다.

  • 칼비노의 작품으론 두 번째 읽는다. 이전에 읽은 ‘반쪼가리 자작’을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제목에서 풍기는 만화라는 단어에 혹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다. 여태껏 읽은 소설 중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한참 전에 읽은 철학소설인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보다 더 힘겹게 읽었다. 그래도 재미난 몇몇 곳이 있어 다행히 모두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읽기 편한 대목은 앞부분이 아닌가 한다. 2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첫 몇 편이 이전에 읽은 작품을 연상하게 하고, 만화라는 제목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반에 우주에 대한 이야기 편으로 넘어가면 스페이스 오페라라 불러도 될 정도의 흥미로운 장면도 나오지만 역시 전체적인 부분에서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는 어렵다.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관념적인 책이다. 엄청나게 미시적이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시적인 전개와 사유가 담겨있다. 3부로 구성된 책인데 뒤로 가면서 더욱 읽기 힘들어진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취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뒤로 가면 철학책이나 과학책을 힘겹게 읽는 느낌을 가지기도 하는데 보통의 집중력으론 단어 위만 스쳐지나갈 뿐이다. 가끔 번역이 잘못된 것 아닌가 괜히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만큼 문장의 구조가 복잡하고 의미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대목이 많다.

     

    보통 소설을 읽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제목에 설명된 해석을 이해하고 크프우프크의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들어야 한다. 그러면 많은 것을 알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크프우프크는 화자이자 가장 조그만 것이고, 동시에 가장 거대한 존재이다. 처음부터 있었고 마지막까지 존재할 이 화자를 발음하기도 힘들지만 어느 순간 앞으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같은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부터 또 다른 생각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결론은 발견한 것이 너무 없다. 옮긴이 해석에도 나오지만 이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앞부분만 본다면 환상소설로, 중반만 본다면 SF소설로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견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철학과 과학과 역사 등은 이런 섣부른 단정을 미리 막는다. 완전히 별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하나의 목적에 의해 충실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비록 완전한 실체를 내가 그려내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느낄 수는 있다. 아마 두고두고 곱씹으며 머리를 싸매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