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출간일 2006년 9월 15일
  • 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방대하고 힘겨운 일이다. 현재의 인물이 아닌 과거의 인물인 경우 더욱 쉽지 않다. 그것도 풍부한 역사적 사료가 없는 인물이라면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심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그녀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넘쳐나는 사진이 있던 시대를 산 여인이 아니기에 그 수많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했을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어떻게 삶을 풀어낼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은 약간 평범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도 나아가도 사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쉽게 빠르게 읽히는 장점은 있지만 문제는 확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소설이지만 그녀의 삶과 시대를 강하게 연결시켜주는 부분이 약한 것이다. 사랑이 있고 역사적 사실이 있지만 그녀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감정과 열정이 왠지 강하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리심이라는 궁녀의 삶이 과연 행복했는가? 불행했는가? 를 파악하기 힘들다. 성장기에 그녀가 만난 상황은 분명히 힘들고 불행했다. 하지만 빅토르 콜랭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세계를 돌아보는 그녀를 보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가 떠오른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늘 우리가 만나는 인종이나 민족 차별주의자들에 대한 글에서 그녀가 겪었을 아픔과 상처는 작가가 길게 혹은 강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사에서 격동의 시기 중 하나인 조선 말기는 참으로 묘사하기 쉽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다. 작가는 여기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집단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묘사하기보다 리진이라는 개인에게 집착하고 너무 많은 리심의 삶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긴장감이나 현장감을 놓치고 있다. 아니면 단순한 리심의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생각이나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할 텐데 그런 입체성 형성이 미흡하다. 장편이기에 더 깊이 있는 인물과 시대를 엮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문장과 그녀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보는 내내 재미있고 무리가 없었지만 역시 소설만이 보여주는 가슴 저린 사랑이나 복잡한 인간관계가 조금 약하다. 김탁환이 보여준 리심과 아직 읽지 않은 신경숙이 보여주는 리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줄거리를 보면 비슷한 흐름이지만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작가의 상상력이 한 사람에 대한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명칭이 더 바른지 모르고, 리심이든 리진이든 상관없이 역사와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낸 것은 동일한 것이다. 신경숙의 특징이 리진에서 잘 묻어나온다면 김탁환의 리심에서 느끼지 못한 다른 개인사와 삶의 여러 굴곡을 만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