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곳이든, 저기 그 곳이든…

연령 17~60세 | 출간일 2013년 10월 11일

`… 출장이든 여행이든 타국으로 떠난다는 생각을 하자, 오랫동안 닫혀있던 머리 위의 창문이 조금 열리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적당히 차갑고 낯선 공기가 드나들었다…. ` – p.34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주인공 요나가 `정글`이라는 숨막히는 직장을 떠나 쉼표 같은 여행을 통과할 줄 알았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나도 그 `적당히 차갑고 낯선 공기`에 머리를 식히고 나로부터 거리를 둔 그 곳으로의 행보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나가 떠난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었다. 재난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을 테마로 하는 `재난여행`
`재난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작가가 상상해 낸 허구의 세계이긴 하나
상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하다.
재난을 흥미로운 스펙타클로 바라보는 시각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런 기대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만난 소설 안에서 서슬 퍼런 도끼가 튀어 나와 내 가슴을 내리 찍는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스스로 위안과 행복을 확인하는 인간의 값싼 우월감.
어떤 무리에 속해 있던 간에 역할을 벗어나는 이들은 결국 그 세상의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슬픈 현실.

지금 이 곳이든, 저기 그 곳이든…
삶이 점점 재난, 재해,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