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해서 초등5년 때 나를 독서의 길로 이끌어 준 그 책을 상상하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1703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산더 셀커크란 인물이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4년 4개월을 지냈고 이를 바탕으로 1719년 대니얼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썼다. 그 외 다른 작가들도 이를 소재로 소설들을 선보였는데 많이 알려진 건 이 두 소설이 아닐까 싶다.

 

트루니에는 철학을 전공해 철학 교수를 꿈꿨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그는 소설과 철학의 가장 바람직한 결합을 선보이는데, 마흔네 살에 발표한 이 처녀작은 출간 즉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로빈슨은 배가 난파당하고 혼자 섬에 와서 탈출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자신만의 왕국을 꾸미기 시작한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법령을 제정하는 등 혼자 너무나도 바쁘고 고된, 그리고 절제된 생활을 보내며 자신만의 왕국에 집착한다.

파란만장한 일들을 잔뜩 기대하는 독자로서는 집착과 고독에 빠져 몽롱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듯한, 이 인물에 정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나중에 등장한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인 방드르디가 좀 멍청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모험적이고 긍정적이라 더 호감이 간다.

 

이것이 바로 트루니에가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소재지만 내용과 주제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디포는 로빈슨이 방드르디를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취급하며 자신의 말은 모두가 진리라고 한 반면, 트루니에는 방드르디를 중요한 위치에 놓았다는 점이다.

백인인 로빈슨이 우울하게 펼쳐놓는 감정들 사이로 방드르디의 순수함과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트루니에가 이 책에서 좀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선보여 읽는 내내 정신이 혼미해 지듯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섬의 식물과 동물 그리고 자연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대단한 관찰력과 표현력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