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잃고 날개도 잃어버린 세대의 표상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아직까지 읽지 못 했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워져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근데 읽으면서도 내가 생각한, 노인과 바다의 그런 자연과 인간 심리를 절절히 묘사했던 것과 많이 달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어차피 소설을 읽을 땐 인물들의 맘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며 읽어야 독자로서 편해지는 법인데 난 이게 잘 안 되는 편인가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길 잃은 세대’의 표상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헤밍웨이 어머니만큼 메스껍고 불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여기 등장하는 여러 주요 인물들 중 정상인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그들은  파리에서 평상시 마주칠 때도, 스페인을 여행 하면서도  눈만 뜨면  술을 마셔대는데 직업이나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할 뿐이다.

게다 그들이 주문하는 음식이나 술 이름, 들먹이는 지역이름 등등은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이 많아 읽는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브렛이라는 여자를 놓고 서로 못 가져 질투하고 싸움질까지 하는데, 이런 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로, 책 읽는 내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제일 제정신으로 보이던 주인공 제이크도 유대인 친구 콘에게 어떤 끈적한 우정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어느 순간부턴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무시하는 태도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 소설 첫 부분에 콘에 대한 구구절절한 인생사 언급이 나와 있어 이 사람이 주인공이려나하는 호기심을 유발했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있으나마나한 엑스트라 존재로 취급되는데 왜 이런 인물을 등장시킨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야기가 더 진행될 듯한 분위기를 풍기다 갑자기 마무리되고 있어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이 책이 시작되기 전에 언급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로 시작되는 구약의 ‘전도서’의 문구를 떠올려 보면, 이 이상하기만 인물들이 전쟁 전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로 돌아오길 바라는 작가의 뉘앙스가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 스페인 여행에서 본 투우 경기장면들이나 송어 낚시 장면의 실감나면서 생생한 묘사, 그리고 유머스런 표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그의 명성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