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란 명성처럼 이 얇은 책 한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초반부에 주인공 노라와 그의 남편의 대화를 잠깐 들어보면 아늑하고 수수한 거실 풍경처럼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정처럼 보인다. 남편은 아내를 종달새, 다람쥐라 부르며 마카롱을 또 몰래 먹지 않았냐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낭비꾼 새는 귀여운데 돈이 많이 든다며 한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가 군것질을 좋아하고 낭비벽이 좀 있는 철딱서니 없는 남편에게 예쁨 받고 사는 여자쯤으로 추축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비밀이 있으니,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조작해 돈을 빌린 것이다. 이 사실을 나중에 남편이 알았을 때 그의 반응이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아내를 사기꾼, 거짓말쟁이, 범죄자라 칭하며 친정아버지의 경박한 성향을 물려받았고 종교도 윤리도 책임감도 없는 인간이라며 막말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빚이 다 청산되었단 편지를 받자마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명예를 희생하는 사람은 없다’며 변명을 늘어놓는 게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작가 라우라 킬레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1876년 폐렴에 걸린 남편을 남쪽 지방으로 휴양보내기 위해 수표를 위조했다가 이 일이 밝혀져 이혼을 당하고 아이들을 빼앗겼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뭐가 그리 대단한 사건일까 싶겠지만 1876년이란 시기를 감안해보면-여성 투표권이 실행된 것이 뉴질랜드(1893년), 러시아(1917년), 캐나다(1918년), 프랑스(1945년), 한국(1948년)-서구에서도 이는 여자들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일깨워 줬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노라처럼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가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싶다.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이런 비슷한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과감히 이혼을 선택하기엔 많은 복잡한 일들이 머리를 아프게 만들어 결단을 내리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