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면도날을 넘긴 힘들지

출간일 2009년 6월 30일

서머싯 몸의 작품은 몇 편 읽어보긴 했는데 그렇게 아주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번 ‘면도날’은, 제목이 책의 내용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이런 소설은 처음이라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에서 그는 마땅히 다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그냥 소설이라고 명명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가 만나고 경험했던 인물들이 열거되기 시작하는데 약간 두툼한 책의 두께만큼이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구나 어느 레스토랑에서 술이나 식사를 할 때도 거기 드나드는 손님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묘사한 부분도 있는데 역시 소설가다운 관찰자의 입장을 잘 드러내는 것들이기도 했다.

 

 

상류 사회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잘 보여주는 엘리엇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자상함과 유머를 가진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을 준비할 때 ‘삶의 불에 두 손을 녹였노라’란 랜더의 시를 인용은 엘리엇 자신에게 너무나 절묘하게 떨어지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엘리엇이 죽어가며 자신을 파티에 초대하지 않은 공작부인을 ‘더러운 할망구’라며 유언처럼 한 마디를 남기는 장면이 있었다. 이는 작가 몸의 숨길 수 없는 쾌활함과 비꼬아 풍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습성이 함께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래리란 인물은 사실 그 당시 전쟁을 경험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를 대변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만들어놓지 않았나 싶다.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흐트러진 시대이니 래리처럼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인생의 답을 찾고 싶기도 했을 것 같다.

 

 

이 책의 해설에서 달과 6펜스로 표현하며 래리를 ‘달의 세계’ 엘리엇과 이사벨을 ‘6펜스의 세계’로 오버랩 된다다고 했는데 아주 잘 정리된 표현이 되겠다.

그리고 이 책의 제사인 카타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에서 나온 면도날이란 단어와 구원으로 가는 길의 상관관계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