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종말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판타지 장르를 가진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 종말이라 하면 주로 종말 이후 황폐해진 세상에 나타난 변종이나 좀비 같은 괴물들을 등장시킨 작품들이 있었는데,최근에는 거기에 더 나아가 인간들의 삶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들을 다룬 작품,여기에 러브 스토리를 추가한 판타지 작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아마도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위한 대리만족의 작품과 최근 장르문학의 융성에 따른 또 하나의 붐으로 보여진다.

그 중에서도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 시리즈 3부작 중 첫번째 책은 이전 작품과 비슷한 소재이긴 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돔 안의 사람들과 바깥 사람들 간의 이원된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돔 안의 생존자를 ‘퓨어’라 부르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바깥에서는 새로운 돌연변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들을 비스트,더스트 등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돔은 최적의 공간이긴 하지만 대폭발 이후 돔 안의 사람들과 바깥 사람들간의 적대감이 생겨났고,또 돔 안에서도 혁명군으로 인한 쿠데타 등 여러가지 이유로 돔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불신의 연속에서 돔 안의 소년 패트리지와 돔 밖의 소녀 프레시아가 마주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데,패트리지가 돔 안의 풍족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면,프레시아는 자신이 한쪽 손이 인형의 머리와 붙어버린 돌연변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쯤되면 이 두 사람의 적대관계가 주요 소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오히려 이 작품은 서로의 목적인 어머니를 찾기 위한 것과 혁명군에서 탈출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도우면서 그들만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한 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여러 군데를 오가면서 펼치는 여정들은 판타지의 설정이긴 하지만 SF적인 요소들도 느낄 수 있었고,각 캐릭터별로 나뉘어진 챕터들과 캐릭터 중심의 서술과 스토리 전개,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구조,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 모습 등은 이 작품의 2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웬만한 영화 그 이상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1부 중 1권이라 정확하게 뭐라 말할 순 없겠지만,작품 안에 펼쳐진 갈등도 이후 작품에서 어떻게 될 지도 궁금하다.

보통 다른 이런 류의 판타지들이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만 집중한 부분들이 많았지만,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주인공들의 아픈 이야기들과 서로 간의 갈등을 많이 다룬 것 같아서 판타지임에도 쉽게 읽혔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이 작품이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1년에 1작품씩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빨리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