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은 죄인가요?

영락한 가문의 딸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동생 스텔라가 살고 있는 극락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스텔라는 가난한 폴란드 이민자 스탠리와 결혼해 지내고 있었고,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다.

첫눈에 스탠리와 블랑쉬는 서로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만, 둘은 사실 같은 종류의 사람들로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욕구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들이다. 동물적 육감이 뛰어난 스탠리는 화려한 치장 뒤에 숨긴 블랑쉬의 욕망을 한 눈에 알아보고 이를 제압하려 하고 블랑쉬는 블랑쉬대로 이민자 스탠리를 무시하거나 깔봄으로서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려고 한다.

블랑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격분한 스탠리는 블랑쉬의 뒷조사를 하고, 그녀에게 떳떳치 못한 과거가 있음을 알아낸다. 그는 블랑쉬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미치와 스텔라에게 블랑쉬의 과거를 폭로한다. 이로인해 블랑쉬의 생일 파티는 엉망이 되고, 미치는 블랑쉬를 떠난다. 스탠리는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간 사이 엉망으로 취한 블랑쉬를 겁탈한다. 그후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블랑쉬는 병원으로 끌려가고 스탠리와 스텔라는 그들만의 평화를 찾는 것처럼 보이며 막이 내린다.

 

허영에 빠진 블랑시와 짐승남 스탠리, 그리고 방관자인 스텔라

말하자면, 블랑시의 욕망은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거다. 부유한 성장과정을 거친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줄곧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모조품으로라도 화려하게 치장하고 싶어 한다. 또 그녀는 슬픔이나 고통을 이기는 방법으로 타인에게 애정을 요구한다. 그것이 비록 마음이 담기지 않은 육욕뿐일지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빈곤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164쪽)

 

스탠리의 욕망은 권력욕이라고 하겠다. 그는 우두머리로 군림하길 좋아하며, 힘에 논리에 충실한사람이다. 또한 그는 자기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욕구도 강한데, 자기 눈에 틀려보이는 것을 바로잡는 것을 중요하게생각하며, 그것이 바로 정의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편 스텔라에게는 안정하고픈 욕망이 있다. 블랑쉬와 마찬가지로 부유하게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주어진 환경에 빨리 적응하며, 분란을 싫어하고 자신을 양보해서라도 주변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그녀의 욕망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건강해 보이지만, 자칫 방관자가 되기 쉽다. 그녀는 블랑쉬와 스탠리의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그녀의 태도는 언니 블랑쉬를 겁탈한 스탠리조차도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중 가장 건강하지 못한 욕망을 지닌 사람은 스탠리이다.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주변인물들을 심판하길 좋아하고, 그를 위해 힘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극에서는 바로 그점이 남자다운 젊은 혈기로 표출되고, 미남배우가 연기를 한다면 더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여질테지만  현실의 남자라면 망설이지 않고 데이트폭력을 구사할 수 있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연극도 영화도 탐날 만큼 재미있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순식간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블랑쉬와 스탠리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때문에 희곡임에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한호흡으로 읽었지만, 책을 덮고서는 ‘이건 뭐지?’ 싶었다. 허영에 빠진 여자가 끝까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취되어 있다가 힘센 남자를 만나 겁탈당하고 그만 정신병원 행이라니..? 정신못차리면 이렇게될 수 있다는 경고인가? 욕망에 휘둘리며 살다간 극락이 아니라 그나마의 현실도 놓칠 수 있다는 엄포인가?

워낙 유명한 작품임에도 의미를 읽어내지 못해 당혹스럽고, 작가와 작품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이해력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재미와 이해는 분명 다른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