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면 눈이 내린다…

설국(雪國)..
그곳에는 차갑게 타오르는 눈.
그 거울에 비친 눈부시게 아름다운 슬픔이 있다.
서늘한 핵을 품고 있는 그 곳에..
소리 없는 진동에도 강렬한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이는 한 남자가 있다.
눈이 갈라놓은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눈에서 태어난 차가운 열정에
맥없이 끌려 오고 또 떠나는 한 남자.

그 남자가 이야기 한다.
나방이 알을 스는 계절,
새쫓기 축제,
눈 바래기, 태내 건너기,
산돌림, 몸울림,
그리고 대지를 끌어안고 그 안으로 흘러드는 은하수.
남자의 시선과 의식이 닿는 그 곳에 놓여진 설국의 아름다움…

남자는 그렇게 나를 눈이 시리도록 하얀 설국으로 이끈다.
묵직하고 고요한 설국의 아름다움.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내 얇은 살갗을 뚫고
차고 흰 눈이 스며드는 것 같다.

내가 읽어내려간 활자들이
어슴프레한 삼나무 숲 위로 끝없이 떨어지는 눈발이 된다.
새삼 눈 없이 흘러가는 이 겨울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