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공저 내역을 가진 소설이다. 프롤로그만 쓰고 이토 게이카쿠는 죽었고, 그의 친구이자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엔조 도가 그 나머지를 썼다. 글을 쓴 분량만 놓고 보면 엔조 도가 거의 다 썼다. 하지만 이 소설의 거대한 얼개를 만든 것은 이토 게이카쿠다.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가 이 소설 속에 그려져 있다. 대체역사소설을 기반으로 한 스팀펑크의 한 종류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굉장히 낯익다. 다른 소설들에서 빌려온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왓슨 박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곁에서 개인 컴퓨터 역할을 하는 죽은 자의 이름이 프라이데이다. 그 유명한 뱀파이어 헌터 반 헬싱도 나온다. 역사 속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이 뒤섞여 있다.

 

처음 책 소개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네크로맨서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인가 하는 것이었다. 엔조 도가 쓴 소설을 생각하면 쉽게 읽을 수 없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지향한다는 말에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원래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이토의 문장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엔도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기보다 오마주와 패러디와 풍자와 철학적 사유를 집어넣어 정신 바짝 차리고 읽게 만든다. 오락적 요소가 곳곳에 심어져 있지만 낯선 세계의 풍경이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거의 끝 무렵에 그 재미를 누리기 시작했으니 조금 아쉽다.

 

기본 설정은 죽은 자들을 되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첩보물이다. 사체에 네크로웨어라는 프로그램을 뇌 속에 넣어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죽은 자들의 법칙이 있다. 그 유명한 아시모토의 로봇 3법칙을 패러디한 것이다. 죽은 자들을 군인으로 사용하거나 경비로 사용하거나 단순하거나 위험한 노동에 투입하는 모습을 보면 로봇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읽으면서 잠시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기억을 살짝 더듬었지만 저질 기억력 때문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많은 로봇을 다룬 소설에서 영혼의 문제를 다룬 것처럼 여기서도 역시 다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는 존재와 하나의 책을 뒤좇는 것이다.

 

주인공 왓슨은 해부학 수업에 들어갔다가 영국 정보조직에 스카우트된다. 그리고 첫 번째 임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다. 러시아에서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고,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카라마조프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낯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이 추적에는 행동파 버나비와 죽은 자 프라이데이가 함께 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크라소트킨이 동행한다. 이들의 추적 속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나와 반갑고도 당혹스러웠다. 이때 이 소설이 패러디와 풍자가 강하게 가미된 대체역사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 추적자 집단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을 뒤쫓기 위해 움직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낯선 설정이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 뒤가 궁금해진다.

 

첫 무대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면 다음은 일본이다. 그리고 무대는 미국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다시 영국이 된다. 이렇게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왓슨과 그의 동료들은 죽은 자의 제국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그 단서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더 원이라고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담긴 책 <빅터의 수기>다. 첫 번째 이야기가 조금 밋밋한 액션이라면 다음부터는 점점 규모가 커진다. 원래 이토가 생각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엔도는 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놓으면서 무거움을 더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무지이자 착각일 수도 있다. 한 번도 이토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장면을 조금 삭제하고 스팀펑크의 오락성만 부각한다면 결코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다. 대체역사를 단순히 역사 속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소재도 빌려와 뒤섞어 놓았다. 단순히 빌려만 온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살짝 그 의미를 틀어놓은 것도 있다. 철학적 명제들이 소설 속 세계관에서 엮이고 충돌하고 풀어지는 과정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패러디와 열린 결말이 주는 상상할 수 있는 재미 때문이다. 묘한 공저가 되었지만 절반 이상은 만족한다. 하지만 원래 아이디어를 가졌던 이토라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