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사랑을 안다

연령 15세 이상 | 출간일 2015년 8월 20일

한 사람이 있다. 그 혹은 그녀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단 하루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5993일을 살았다. 5994일이 되는 날 스스로 A라고 하는 사람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리애넌이다. 그녀는 5994일째 몸 주인인 저스틴의 여자 친구다. 이 둘의 관계는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리애넌이 더 매달린다. A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리애넌과 함께 바다로 간다. 이 짧은 여행은 이 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A와 리애넌의 사랑 이야기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하루하루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은 의미와 삶을 담고 있다.

 

매 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 된 A. 리애넌을 만난 후 변한다. A는 그녀를 보고 싶다. 다행이라면 A가 깨어난 동네에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거리는 길어도 1~2시간이면 충분하다. 몰래 그녀에게 접근한다. 어떤 때는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순간은 남자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외모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엄청난 뚱보로, 때로는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채. A에게 성은 큰 의미가 없다. 외모도 의미가 없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의 성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의 시각 속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다.

 

사 랑은 위험한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정이 삶과 세상을 변하시킨다. 자신을 깨닫게 한다. A도 이 감정 때문에 실수를 한다. 먼 거리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제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면서 남긴 흔적 때문에 그가 하루 동안 머물렀던 네이선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물론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이것은 A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A와 A가 머물렀던 네이선 모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네이선은 A를 악마로 부르고, A는 이에 변명한다. 리애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A의 정체는 무엇일까? A와 같은 존재들이 또 있는 것일까?

 

자 신의 선택이 아닌 알 수 없는 방식으로 A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 몸에서 깨어난다. 선택하기 따라서는 몸 주인의 일상이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하루 동안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삶이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 이렇게 적응하지 않은 존재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어디, 누구의 몸에서 깨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A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랑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A가 일상으로 삼았던 일들이 흐트러지는 계기가 된다. A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이 일상과 관계의 반복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개 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A가 리애넌의 몸에서 깨어난 하루다. 이때 하루 동안 그녀의 몸안에서 살면서 느낀 감각과 감정들은 평범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준다. 그녀가 보고 듣고 움직이고 만지고 부딪히는 느낌 모두가 A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갑자기 짝사랑했던 그 옛날 기억 한 자락이 떠오른다. 그녀가 걸었던 길, 만졌던 물건, 보았던 시선, 곁을 지나면서 풍겼던 향기 등등. 평생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물론 그 당시는 이보다 더 아픈 일이 없지만. 소설 속 두 인물의 사랑은 성이나 외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눈빛에 담긴 감정이다.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A의 존재를 발견하는 리애넌을 볼 때 이들의 사랑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일이 없는 이들의 현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