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서 하나씩 읽어보는 중이다. 그래서 선택한 그레이스. 이 책은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참고로 이 소설은 1840년대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집주인 키니어와 그 집의 가정부 낸시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6살이였다. 그 집의 마구간지기 였던 맥더모트도 살해 혐의 용의자로 같이 체포 되었다. 낸시는  키니어의 내연녀 였으며, 살해 당시 임신 중이였다. 맥더모트와 그레이스는 둘을 살해 후 미국으로 도망쳤으나 체포되었고, 재판으로 맥더모트는 사형, 그레이스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맥더모트는 실제 살해에 관여했으나, 그레이스는 낸시의 살해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실제 가담했는지 여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같이 도망쳤다는 점, 죽은 낸시의 목에 그레이스의 손수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정황증거상 그녀가 살해해 가담했을 것이라 재판부는 판단한 셈이다. 하녀가 유한계급인 주인을 살해했다는 사건은 당시 여론에서 정말 ‘핫’할 수 밖에 없었다. 키니어를 사랑한 그레이스의 복수였다는 등, 정말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스토리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양산되었다고 한다.

책 “그레이스”는 그 내용을 그대로 차용했으나, 그레이스와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자하는 정신과 의사 조던박사의 시선을 따라 스토리가 진행한다.

 

그레이스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가던 배안에서 어머니를 잃었고, 캐나다에 도착하여 폭력적이고 일하지 않는 아버지를 떠나 하녀로 일하던 첫 집에서 만난 메리 휘트니, 유일한 친구였던 메리를 잃고, 여러집을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키니어의 집. 낸시와의 관계, 그녀와 친분이 있었던 제러마이어의 제안, 살인사건.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에 대한 그녀를 짝사랑했던 제이미의 증언.

조던박사는 그레이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질문과 여러 방법을 써보지만 여전히 그레이스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정말 무죄일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는 척을 하는 것일까?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써 성차별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였다. 실제로 낸시에 대한 살해혐의가 아니라 주인인 키니어의 살해로 인해 형을 받았다는 점, 조던 박사가 그레이스의 이야기 중 일상적인 일을 했다는 진술에서 구체적으로 당시 여성의 일상적인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부분 등이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그레이스에게 하녀는 노예가 아니며 일종의 직업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그 격차를 깨고자하는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800년대에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애트우드의 스토리이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궁금하다. 그레이스는 정말 무죄일까?! 아니면 정당방위?! 아니면 또 다른 이유?!

같은 사건을 두고 수재너 무디의 이야기, 애트우드의 이야기가 다르듯 이 책을 원작으로 나오는 드라마 속의 그레이스는 또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다.

 

“나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조그만 하얀색 네모가 그려진 노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는 거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남자들은 자기가 어지럽힌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지럽힌 것 뿐 아니라 그들이 어지럽힌 것까지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앞날을 걱정하거나 저지른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길러졌을 뿐이다.”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