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전세계에 의문의 바이러스가 퍼졌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잃었다. 바이러스로 인해서, 광기에 사로잡힌 타인으로 인해서, 때로는 그런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살아갈 힘을 잃은 자들의 자살로 인해서.

책은 바이러스로 시작된 인간 사회의 멸망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무정부상태가 되고, 다수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윤리(?)라는 것이 무너지면 야만만이 남는 것일까. 야만은 사람의 이성을 무너뜨리고, 비정상속에서 정상이라는 기준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그 기준을 바꾸어버린다. 지나의 아버지와 같이. 살아남는 것 외에는 어떤 기준도 없어지는 사회. 살아남는 다는 것이 곧 권력이 되어버리는 사회일지도.

무엇이 옳은것인지 그른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시대,

그속에서 젊은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야할 미래를 꿈꾼다. 아니 현재 생각을 놓지 않음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냄으로써 아직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그려지는 미래랄까.

 

어린 여자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도 안되는 소문으로 여자아이들이 죽어가는 시대,  그런 미소를 지켜내는 도리.

도리를 길에서 만나 그녀와 여정을 통해 사랑에 빠진 지나.

남편인 단과 해민과 해림을 낳았으나,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가정을 뒤로하고 일만하던 나는 해림을 전염병으로 보내고, 해민을 안고 단과 한국을 탈출한다.

각기 다른 세 가족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였다가, 하나로 모였다가 다시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들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 이 스토리는 어쩌면 디스토피아같기도, 그래도 인간다움이라는 존엄을 지키는 도리와 지나와 건지를 통해 미래를 꿈꿀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사회기반이 사라진 세상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하찮을 수도, 아닐 수도.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유사했다. 모두의 눈이 보여지지 않는 사회. 힘을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  그 속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것인지를.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것이 있을때, 무엇보다 강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볼수도. 그 지켜야 하는 것의 가장 바탕엔 사랑이 있었다. 살아남아서 보고싶은 이들, 살아남아서 만나고 싶은 이들. 살아 남아서 지켜내고 싶은 나의 아이들.

멸망과 사랑이라.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늘 붙어다니는게 참 신기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연했던 것들을 하지 못함으로써 각인되는 사실이랄까. 그런 서로가 두려워지는 사회라. 그런 사회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있기에 인류는 버텨나가겠지만, 내가 알던 이들이 두려워지는 사회는 정말 맞닥트리고 싶지 않다.

미소는 어른이 되었을까.

 

“그런 게 지나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느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