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행간의 문장들까지 읽고 싶은 작품!

72개의 지하 방으로 이루어진 천산 수도원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와 함께 시작된 이 작품은 다섯 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형의 유고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강상호의 이야기, 출간된 책을 읽고 천산 수도원의 벽서를 켈스의 책에 비견할 만하다는 글을 쓴 차동연의 이야기, 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 장의 이야기, 그 속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의 이야기, 그리고 사촌 누나 연희를 능욕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고 천산 수도원으로 도피하게 되는 후의 이야기. 이렇게 천산 벽서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섯 개의 이야기는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전혀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이 겪게 되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욕망과 권력, 비극과 정치 등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끼어들어,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를 들여다본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해야 하는 순간 (p.321)’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주하게 하고,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견디게 하고, 이해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을 넘어서도록 한다. 나는 이승우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종종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2012년 출간되어 2013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작가가 십 수 년 전부터 구상했던 모티프가 마침내 실현된 작품으로, 욕망과 죄의식?신학과 실존?윤리와 정치 등 이승우 문학의 화두가 집약된 정점이자 정수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묵직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작품인데, 이번에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곳’의 부당함이 어쩔 수 없이 불러내는 ‘저곳’ (작가의 말), 그리고 죽은 자로부터 산 자에게로 이어지며 서서히 드러나고, 이들의 ‘이어 쓰기’가 거듭되는 동안 (작품 해설) 펼쳐지는 신학과 윤리의 세계를 만나 보자. 이승우의 책을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그 한 권은 단연코 <지상의 노래>일 거라는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