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가 여럿인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가 가졌던 여러 문학적 정체성(이명異名작가) 중에 나는 가장 비현실(현실적 감각을 초월했다는 의미에서의 초현실이 될 수도 있다)과 이상에 가깝다고 느낀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로서의 시가 기억에 남는다.

카에이루는 시에서 “한 송이 꽃과 과일 하나의 아름다움”마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의 이름”이고, 그 아름다움은  “그저 존재할 뿐인 사물들에 대한 인간의 거짓말”이며 “내게 주는 만족감의 보답으로 내가 사물에게 주는 것”이라 얘기한다.

다른 이명들을 대입하여 수많은 글을 쓴 페소아는 보이는 것만 보기의 어려움에 대해 카에이루의 정체성에 서서 논하며 시 창작의 잠재성을 개방했고, 동시에 본명 페소아로서 지은 시에서 보여준 감각적 표현에 대한 의도적 반목과 대립을 통해 지속적이고 자발적으로 창작의 틀을 조형했다.

—–

“꽃들이 색을 지니듯 나는 생각하고 쓰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완벽하다

왜냐하면 온전히 외형만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단순성이 내게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