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다시 본 김지영

전국에서 3백2십만 몇 번째로 <82년생 김지영> 영화판을 봤다. 내친김에 원작을 다시 읽음. 플롯이 거의 같고, 인물의 면면도 거의 그대로인것 같은데,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전체적인 온도도 전혀 다르다.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 지영은 조금 더 돌려받는다? 대충 그렇다. 예컨대 만년필 같은 것을. 그리고 대현의 눈물(…) 같은 것을. 거기서 어떤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만년필에 담긴 ‘(남성)가족’의 ‘온기’는 철저히 영화에서 도입된 것이다. 영화는 이것을 두고 위안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거기서 지영이 발견하는 삶의 변곡점을 보며 놀란다. 그러면서도 “애초부터 출구가 없”는 현실을, 그리고 소설 속 지영이 여전히 머무는 박탈을 곱씹는다. 대현이 눈물 흘릴 때, 상영관 안의 공기가 짜게 식었던 풍경도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현실에 매우 충실하게 바탕을 둔 이 이야기를 어디로 이어가야 할지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영화의 지영은 아직 베란다에 머무른다. 언제까지고 그를 거기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