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_민음북에디션

민음사 북클럽 가입 이래로 처음으로 완독한 스페셜 에디션북은 다름아닌 <수레바퀴 아래서>이다.

원래는 금오신화에 먼저 손을 댔었는데, 시구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고 무엇보다 어려워서 때려쳤다.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공부하던 기억이 떠올라 시구만 붙잡고 해석해보고 말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난번에도 포스팅했다시피 민음북클럽에 가입해서 세일즈맨의 죽음, 금오신화, 중국신화전설I, 벌레 그리고 수레바퀴 아래서를 주문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기전까지는 헤르만 헤세 작품은 존나게 어렵다!라는 인상을 심어준 데미안과 비슷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정독을 하고나니 헤르만 헤세가 젊은 시절에 집필한 책이어서 그런지 그의 경험이 곁들여진 한 소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지켜보는 느낌이 강했다.

데미안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기독교적인 상징이 작품 곳곳에 강하게 투영되어 등장인물들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반면 수레바퀴 아래서는 좀더 소설다운 헤세의 작품이란 인상을 받으며 재미있게 읽었다.

 

 

헤르만 하일너가 헤세 본인을 투영시킨 인물이라는 글을 예전에 어디서 본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수도원 생활에 싫증을 느낀 천재 시인 소년. 날마다 상념과 고뇌에 빠져 변덕을 부리는 문학가, 그리고 수도원 탈출…까지

헤르만 하일너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다.

책 맨 뒤에 적힌 헤르만 헤세 연보를 살펴보면 그도 7개월인가 그쯤에 수도원을 탈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여튼 이 소년이 한스에게 여러모로 다양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결말에 관해서 말한다면 한스는 자살한다. 여러모로 신학교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신경 쇠약에 걸린 한스는 나날이 약해져갔다.

그러다가 우울증도 오고 여친도 사귀고 견습공도 되고 친구들이랑 놀면서 그는 지난 수십년간 자신이 경멸해오던 삶에 소속된 채 타락하고 붕괴했다.

이게 말이 타락이지 실질적으로는 너무 조숙한 탓에 세상에 환멸을 느낀 거나 다름없다.

결말에는 친한친구 견습공 아우구스트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시다가 강물에 빠져 죽는다.

자살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긴하지만 한스의 말년을 생각해보면 그에겐 충분히 회생의 기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언젠가부터 자살을 염두에 두지 않기 시작했다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강물에 빠진건우연한 사고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끝까지 한스를 응원했던 본인으로선 그의 죽음은 좀 얼탱이가 없었다.

좀더 나은 결말을 지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싶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깊은 상처를 입어버린 한스에게 가장 필요했던건 안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서 그다지 한스의 죽음이 해피앤딩도 배드앤딩도 아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성경공부를 해본 것도 아니고 고전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기엔 본인의 속이 아직 어려서 이 책에 숨어있는 다양한 의미를 뜯어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렇다고 성경공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한스의 처지는 많은 수험생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학교 입학을 두고 불안에 떠는 한스를 보면서 작년에 대학입시하느라 오지게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가 느끼는 부담감에대햐여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또한 원하던 삶에 대한 실패와 극복의 문제를 놓고도 한스에겐 어떠한 여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막막한 감정이 들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스가 각성하고 하일너처럼 자유분방한 일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소설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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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아무쪼록 좋은 소설이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릴때 읽으면 그냥 한 편의 좆같은 소설로 남았을 것 같은데 좀 대가리 큰 뒤에 읽어서 책이 가져다주는 울림이 컸다.

더 나이가 들어서 읽으면 보이는 상징들이 더 늘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