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서툰 사랑을 했었어

  ‘는 동경해왔던 민선 선배를 사랑했다그리고 인희는 오랫동안 를 짝사랑해왔다이들에게 성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여고에서 동성애 팬픽은 물론이거니와 동성애도 만연했다그때의 우리는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으며 서로를 사랑했다그때의 우리를 사로잡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선배나 선배를 진짜 좋아했어정말정말 좋아했어그만큼 미워하기도 했지만그때는 매 순간 선배 생각만 했었고선배와 같이 있을 땐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어우리가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들의 사랑은 무척 확실하기도 하고모호한 상태에 머무르며 긴장을 하게 되기도 한다이들은 그게 과연 내가 가지는 감정이 맞는지아니면 그저 집단의 문화에 휩쓸리는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선택했을까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 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항구도시 목포의 여고는 무척 외딴 곳이라는 분위기를 준다대학을 가게 될 때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으리라아이돌을 좋아하고 가수를 좋아하는 것을 대학에서는 용인되지 않는 문화였던 것이다더욱이 동성애는 말도 꺼낼 수 없는 문화였다여고를 다녔고남고를 다녔던 스무 살의 학생들은 각자 이성의 짝을 찾기 바빴고이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는 대학에 가고인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그건 다 뭐였을까?”나는 인희의 시선을 피한채 단호하게 말했다.그땐 다 미쳤었어.”그것이 내가 인희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인희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사람들 틈에 섞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사랑은 미친 짓으로 기억되는 게 그들에게는 편했으리라고 생각한다이들에게 동성애’, 그리고 팬픽은 학창시절의 추억정도로 회상될 것이다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추억이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낯설고 서툰 사랑은 무척 아픈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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