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0 | 잭 런던 | 옮김 권택영
출간일 2010년 10월 22일

알지 못했던 작가의 알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네이버 오디오클립 ‘김태리의 리커버북’을 통해서였다. 김태리 배우님의 연기를 좋아해서 잠이 안 올 때 침대에 누워서 듣기 시작했는데, <야성의 부름> 클립을 듣고는 책의 본문도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야성의 부름>은 남부의 부유한 집에서 살던 벅은 그 집 정원사에 의해 알래스카로 팔려가는데, 아주 시리고 추운 환경에 처음 던져진 벅이 자신의 속에 잠재되어있던 야성을 꺼내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책의 화자가 인간이 아닌 개이기 때문인지 인간의 시각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진행되는 전개에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 읽은 것 같다. 알래스카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면 할수록 남부의 환경(문명)에서의 성향은 버리고 야성을 깨우는 벅의 모습을 보며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거친, 날것의 자연에 던져지면 문명을 버리고 야성을 꺼내들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파리대왕>을 읽으면서 했었다. <파리대왕>에서도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이 이성을 버리고 본능을 택하면서 벌어지는 대립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성의 부름>과 <파리대왕>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 것일까 싶은 게 <야성의 부름>에서 벅도 ‘야성의 부름’을 좇아 마음껏 달렸다가 손턴에게 돌아왔을 때 손턴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었듯이, <파리대왕>에서도 소년들이 끝내 이성을 놓고 랄프를 ‘사냥’(아마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쓰이진 않았을텐데 내가 읽으며 느낀 바는 그렇다.)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그 불이 섬 전체를 집어삼킬 때가 되서야 구조의 손길이 도착하는 아이러니에서 내게 다가오는 감정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문명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본능(야성)이 무조건 옳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나도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낀 걸 수도 있다.​

오디오클립을 들으며 혼자 상상했던 것보다는 덜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요즘 책을 읽으면서 세계문학에 대한 편견이 덜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세계문학전집만 보면 ‘이건 분명 재미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요즘에는 읽어보고 싶은 작품들도 많이 생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무조건 문장이 복잡하다고, 사용된 단어가 현학적이라고 기피하던 과거와는 달리 어려워도 부딪혀서 읽게 된다.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며 읽으니 여전히 어렵지만 나름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감상을 짧막하게나마 남기면서 글도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