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소설의 첫 문장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된 적은 없었는데 이 문장이 유일하다. 소설이 나온 연도를 찾아보니 우리 할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때 나온 소설이었다. 거의 2세대를 거쳐 나에게로 온 책인데 옛날 말투와 나의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과 동일한 주인공 ‘숙희’의 이름 빼고는 어색함이나 고루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설렘이 더 컸다.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에 대한 묘사가 지금의 무덥고 습기가 가득한 여름이 아닌 투박하면서도 싱그러운 여름을 잘 보여줘서 나도 그 시대의 여름을 그 시대의 여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나와 같은 젊은 여성이었을 때 읽은 소설이 지금 2020년에 사는 젊은 여성인 나에게 설렘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고, 좋은 문장은 시공간적 의미와 그때의 세대를 벗어나도 좋음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