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선1

앞서서 읽은 것은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 나도향, 최서해, 김유정 이고,

이번엔 채만식, 이상, 이효석, 이태준, 정비석, 염상섭 부분이다.

이상과 이효석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외 이태준, 정비석, 염상섭은 생소함이 있다. 어쩜 학창시절 배웠어도 기억에 남지 않은 인물이거나……;;;;;;;;

역시 한국고전은 외국고전과 확연히 틀리다.

문장부터 우리 고유의 문체, 서정적 정서를 듬뿍 담고 있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차분하면서도 아련하기도 하다.

특히 이북말?이나 사투리가 많이 쓰여 있어서 그 뜻을 이해하기엔 조금의 힘듦도 있긴 했지만 뭐랄까, 한국고전의 묘미랄까? ㅎㅎ 문체의 표현 역시 섬세하고, 순수하며 꾸밈 없는 글자체가 좋았다.

역시나 엄청 유명했던 이상의 <날개>는 숫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읽는 건 처음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고 어떤 이야기길래 이리도 유명한 작품일까, 내심 기대를 갖고 읽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고.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로 시작하는 <날개>는 자신의 감정은 절대 드러내지 않으며 골방에 틀어박혀 외부와 단절 된, 말그대로 박제가 된 듯한 독특하면서 무능한 주인공의 형태를 관찰자 시점으로 쓴 이야기다. 읽고 나서는 ‘음… 아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유명한 건가?ㅎㅎ)

무능하고 직장도 없는 주인공은 기생인 아내에게 의존해 살아간다. 아내가 없을 땐 아내의 방 화장대에서 아내를 느끼며, 돈을 줘도 쓸 줄 모르는 남자다. 아내가 하는 일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그게 아내에 대한 배려라 생각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그들은 각방을 쓰고 도무지 부부라 할 만큼의 모습이 없다.

어느 날, 비를 흠뻑 맞고 온 남편이 앓아 누웠다. 아내는 남편에게 아스피린을 매일 건내 준다. 하지만 왜 그 약만 먹으면 닭병 걸린 닭 마냥 졸음이 쏟아지고 맥을 못추는 걸까. 근 한달을 그렇게 잠으로 생활을 했다.

하루는 아내를 느끼고 싶어 아내의 방에 갔다가 화장대 밑의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건 그동안 자신이 먹었던 아스피린인데, 그런데 어딘가 약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아내는 남편에게 준 것이 정말 아스피린 일까?

아내가 내객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도 남편은 과연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왜 그들은 각방을 썼을까?

고립된 생활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마지막 남편의 행동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운이 많이 남는다.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을 만큼의 작품이다. 참으로 인상 깊고 특히나 주인공의 운둔형 형태의 모습이 독특하며 기이하다.

그리고 또 한 유명한 작품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은 허생원이라는 떠돌이 장돌뱅이의 삶과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허생원과, 동이, 조선달 세 사람은 봉평에서 대화 장터로 물건을 팔러 간다. 이들의 배경은 메밀꽃이 핀 달밤을 보여주는데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가 장면을 절로 떠오르게 할 정도다.

가는 길에 허생원은 성 서방네 처녀와의 추억이 깃든 봉평장만큼은 빠지지 않고 들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그리워 한다. 동이 또한 자신의 홀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의 친정이 봉평이란 말을 듣자 자신처럼 왼손잡이인 동이를 보며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평생 장돌뱅이로 떠돌며 살아가는 허생원이지만 그의 삶이 그리 외롭고 헛헛하지만 않은 건 아마도 지금도 그리워 할 만큼 사랑했던 여인을 품고 살아가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봉평장 갈 때만큼 그의 마음은 행복하리라.

자연과의 교감을 아름다운 문체로 풍부한 감성과 푸근한 정경을묘사한 <모밀꽃 필 무렵>은 학창시절의 감정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와닿아서 역시 고전은 나이가 좀 들어서 읽어야 조금이라도 그 맛과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ㅎㅎㅎ

그리고 제일 가슴 아프고 아팠던 작품이 이태준의 <밤길>이다.

극심한 가난으로 처자식을 남겨 놓은 채 인천 월미도로 돈을 벌러 온 황 서방은 갑자기 집주인이 아픈 아기와 두 딸을 데리고 불쑥 나타난다. 황 서방의 아내가 가출을 했단다. 황 서방은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지만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거란 말을 듣고 돌아오지만 새 집에서 아이가 죽어 나가면 집주인이 좋아할리 없다는 권 서방의 말을 듣고 황 서방은 권 서방과 아이를 안고 밤길을 나선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쏟아지는 밤길을 걷는 황 서방과 권 서방의 모습. 가난 때문에 죽어 가는 자식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비의 모습. 이 얼마나 비참하고 비극적이며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오늘 밤은 못 넘기니 그냥 안고 나가라는 간호부의 말에

“한이나 없게 약을 좀 줍쇼”라는 황 서방의 말에 목이 메인다.

약을 먹여 나을 게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보지도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나마 ‘한이나 없게’ 란 말이다.

처음 읽은 이태준의 단편이지만 이렇게도 사람 맘을 헤집어 놓다니…

마지막을 읽었을 땐 내가 다 한바탕 울고나서 기운이 쫘악 빠진 느낌이다.

너무나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생각과 한국고전의 고풍스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많이 느끼고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이제는 고전이 점점 재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