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이솝 우화집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74 | 이솝 | 옮김 유종호
출간일 2003년 4월 15일

아름다운 문명이 무색하게 고대 그리스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았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이솝 우화에 있다. 앞의 50개 이야기 중 무려 14개다. 약하거나, 약한데 어리석기까지 하거나, 사악한 일을 획책해서 더 강한 인물에게 죽는 이야기가 14개나 된다.

 

우화는 동물이나 자연현상 등에 빗대어 사람의 삶을 조명하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동물과 자연현상을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무려 28% 확률로 사람이 죽는다. 죽을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것을 포함하면 36%다. 한 이야기에서 한 명만 죽는 건 아니니 코난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일 것이다. 평균적으로 한 쪽에 담기는 짤막한 이야기 모음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사망률이다.

 

물론 죽음은 진짜 죽음이라기보다는 ‘온갖 고난 기타 등등’을 대표하여 경각심을 주는 결말이다. 그래도 반갑다. 이토록 폭력이 만연한 사회였다니. 심지어 도시를 떠나 사막에 사는 진실의 신이 이렇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랑 달리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기시감이 생긴다.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다’라는 라떼설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교육생 필기라고 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꼰대 습성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내 가설에 이솝 우화가 설득력을 더한다.)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문학인 우화는 약자의 입장에서 조금 덜 똑똑한 약자에게 살아남는 꾀를 알려준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약육강식*에서 적자생존**으로 바꾸니 지혜라 할 만하다. 아이소포스(이솝 본명)의 출신(사모스의 시민 이아드몬의 노예)이 왠지 전문성을 보장하는 것 같다.

*약육강식: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적자생존: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이솝 우화가 팔린다는 것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지혜를 원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21세기도 강자가 날뛰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이솝이 살았을 기원전 5세기부터 한결같은 인간 본성이 밉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오랜 옛날부터 검증된 해결책이 내 손에 있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그냥 읽어도 재밌지만, 207가지 우화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 응용할 수 있다. 56번과 120번 이야기를 엮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56번) 너를 밟은 첫 번째 사람을 물었다면, 다음 번 사람은 선뜻 너를 밟지 못했을 것이다.

120번) 우연히 본 사자를 사냥개가 쫓았다. 달리던 사자가 몸을 돌려 으르렁대자 사냥개는 겁이 나서 뒷걸음치며 물러섰다.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한 술 더 떠서 무시할 때 누가 봐도 확실하게 거부하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진다. 하지만 하도 사납게 굴어서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은 사람도 막상 단호하게 거부당하면 당황하게 마련이다.

은근한 괴롭힘이든 따돌림이든 성추행이든 성과 가로채기든 피해자에게는 잘못이 없다. 가해자가 ‘쟤는 이렇게 해도 아무 말 못 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그런 생각의 싹을 뽑아주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

 

실전에서는 짜증, 분노, 모멸감을 뒤로 하고 차분히 심호흡을 하자. 정말 물어서도 안 되고,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 다만 눈을 보고, 존대를 잊지 말고, 단호하게 말하자. “그 말씀 재미없어요.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둘이 있을 때 말하는 게 낫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난처한 상황을 조장하는 등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편, 이솝 우화에서부터 드러난 인간의 욕망(안전)이 최근 돌파구를 찾았다. 코비드19가 비대면 의사소통의 장을 확대한 것이다. 기술 발전이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화상회의로 협업했다. 드론이 자가격리자를 위한 지원 물품을 나르고, 로봇이 공항 안내를 한다. 모두 오래된 염원을 실현하려는 지난한 노력의 결실이다.

김용섭의 <언컨택트(Uncontact)>는 이와 같이 편리하고 안전한 ‘단절된 소통’의 대두, 예측되는 일상의 변화, 인간 소외 등 사회 문제 심화 현상을 말한다. 앞으로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지, 우리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그럼에도 이솝 우화집은 10년 뒤에도 서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변함없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의 콜라보 덕분에 비접촉 소통이 상용화되는 과도기라도, 변함없다. 어떤 매체를 통하든 사람 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고전을 통해 인간의 본성, 욕망, 지향점을 탐색하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