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11년 3월 18일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언제부턴가 죽어가는 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처음엔 한두 마리였던 것이 며칠이 지나자 쥐들은 떼를 지어 거리로 나와 죽었다. 집안의 구석진 곳으로부터, 지하실로부터, 지하창고로부터, 수쳇구멍으로부터……

랑스도크 통신이 약 8000마리의 쥐를 수거했다는 뉴스를 발표하자 도시의 불안은 절정에 달했고, 사람들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 한다. 다음 날 통신사는 그 현상이 멎었고, 전날 알려진 쥐의 수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감소했다고 보도 하자 사람들은 안도 한다.

그러다 한 수위가 사타구니에 종기가 나고 고열과 구토 증세를 보이다 결국엔 죽어버렸다. 수위의 죽음은 영문 모를 징조들만 난무했고 괴상한 병으로 죽어간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한편, 오랑의 한 호텔에서 살고 있는 장 타루는 오랑에  도착한 날부터 아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쥐 사건에 대해서도.

“숫자가 불어 가고 있어요, 선생님.”

“사십팔 시간 동안에 사망이 열한 명 꼴이니까요.”(61p)

사태의 심각성을 안 의사 리유는 고집을 세운 덕에 도청에 보건 위원회를 소집하는데 성공 한다. 의사들은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적절할지 알아내는데 있었다. 사실 페스트라는 걸 잘 알지만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면 무자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사는 흥분해서 온당한 논리가 못 된다고 펄쩍 뛰었다.

“(… …) 전염된 가정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병이 퍼지고 있는 추세로 보아서는, 이 상태가 중지 되지 않는 한 이 개월 내에 이 도시의 반수가 생명을 읽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패스트라 부르건 지혜열이라 부르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본문에서)

의사 리샤르 역시 자기 환자와 가족은 무사하니 전염성도 확실하지 않다며 인정하려 들지 않다가 결국에 리유의 의견에 지사와 모인 의사 모두는 동의를 한다.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도시는 혼란에 빠지고 감옥아닌 감옥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정말 짜증과 답답함이…;;;;;;;;

왜 리유의 눈에만 심각성이 보이는 걸까? 숨기기에 급급하고 어떻게든 사태의 심각성을 줄이려만하는 저들의 눈엔 죽음조차 두렵지 않단 말인가. 아니, 죽음은 두려워 하면서  심각성은 감추려 한다. 오히려 발벚고 나서야 하는 사람들이…

리유, 미셸 영감, 타루, 코타르, 랑베르, 그랑, 파늘루 신부 등 각 인물들의 페스트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습들은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도 다를바 없다. 특히나 파늘루 신부의 설교에서는 그간 떠들썩 했던 신천지가 생각 나기도… 받아들이는 자, 그렇지 않은자, 오히려 그 속에서 안의를 찾는 자 등 이들의 다양한 행동이 현실과 너무나도 닮았다.

갑작스런 고립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이별해야하는 공포는 그들에게 상실감을 줬고 기나긴 전염병의 공포에도 서서히 수긍해 가지만 이들의 간절함은 마을의 봉쇄가 해제되는 것이다. 우리들 역시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가. 자유로운 활동을.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생지옥으로 변해가는 사태를 거부하며 진리의 길을 가는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서 비극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오롯이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이 책이야말로 진정 지금 이 시점에서 꼭 읽어야할 작품이 아닌가 말하고 싶다.

읽는 내내 리유의 모습에서 가슴이 아팠다. 병든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결국에 아내의 죽음조차 볼 수 없었던, 그러면서도 본분을 다하려 분투하는 그의 모습. 어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기나긴 시간 끝에 리유는 자기기 사랑한 모든 사람들을 잊혔다. 그래서 그는 기록하려 한다.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리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승리 끝에 아내와의 이별을 끝내고 포옹하는 랑베르의 모습을 보았을 때 기쁨의 소름이 오소소 돋은 이유는 그들의 지옥과도 같은 페스트속에서 헌식적이었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나긴 시간 끝에 페스트는 물러가지만 페스트에 맞서 헌신하던 그들의 모습에 지금도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고생하시는 의료진들, 봉사자들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물론 시민들의 자발적, 헌신적인 규칙과 질서가 있었기에) 무사히 잘 견뎌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일부 몰상식한 인간들이 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