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00년 12월 2일

올해의 목표중 하나가 한 달에 한 권 <고전>읽기다. 이로서 3월의 <고전>읽기는 <데미안>인데 아직까진 잘 지켜가고 있다. <고전>읽기가 쉽지만은 안다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끝까지 잘 지켜가길 바라면서~^^

<데미안>은 책을 늦게 접한 나도 모르지 않는 책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적, 학창시절에 멋모르고 읽었다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옛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엊고 있는 책이기도 하면서 어렵단 얘기가 많은 책이다. 그래서 순간 느낀 건… 괜히 이 책을 잡았나?? 하는…ㅋㅋㅋ
어쩐다~나도 이해 못하면 어쩌지?? 괜한 걱정이 앞서는 건 <데미안>이기 때문…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청년으로 커가는 과정을 야기하는 소설이다. 성장 소설이긴 하나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모습을 싱클레어를 통해 아주 묵직하게 보여준다. 읽는 대는 어려움이 없지만 종교를 다룬 부분에선 난 무교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데 애좀 먹었다. (검색하며 읽어 감ㅋㅋ)

따스하고 밝은 가정속에서 안정적으로 착하게 살아가던 싱클레어. 본의 아니게 크로머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돈을 뜯기는 괴롭힘을 당한다. 학교 가는 것조차 두려워 할 정도로 괴로워 하는 싱클레어 앞에 나타난 데미안. 그런데 데미안이 크로머에게 어떻게 했을까? 다시는 괴롭히지도 않고 마주 쳐도 모른 척 지나쳐 가는 크로머. 하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선과 악을 다르게 이해하게 해주지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이야기에 깊이 고민한다.

싱클레어가 커가는 과정에서 그에게 영향을 주는 몇 명의 인물이 있다.
한마디로 나쁜 녀석인 프란츠 크로머. 싱클레어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협박하며 괴롭히는 녀석이다. 또한 착하기만 했던 싱클레어에게 악이란 것을 맛보게 해준 녀석.

그런 나쁜 녀석을 단번에 제압해 준 데미안. 그는 협박을 당하는 크로머에게서 벗어나게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데미안은 단호한 얼굴에 어딘가 우월하고 침착했으며 싱클레어에게 종교의 신성모독적 이야기(카인, 쳐죽임, 표적)로 혼란과 큰 파장을 일으켜 준다. 데미안은 ‘선’일까 ‘악’일까…

그렇게 악의 유혹에 빠져 살던 싱클레어를 어두운 내면에서 벗어나게 해준 또하나의 인물은 바로 미소년 같은 소녀 베아트리체. 그녀로 인해 성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처소)를 열어 주었고 기도자로 만들었으며 부서진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하여 ‘환한 세계’를 만들어가려는 싱클레어. 그리고 데미안의 엄마 에바 부인.

그리고 음악가 피스토리우스.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의 또 하나의 가르침을 준 인물. 그 자신이 성숙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간직하는 법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하다. 싱클레어가 한 말들, 꿈들, 환상과 생각에서 늘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언제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라고…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도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결코 잊지 말게. 하지만 자네가 언젠가 나무랄 데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 때, 그때는 압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그때는 자신의 사상을 담아 끓일 새로운 냄비를 찾아 그가 자네를 떠나는 거라네.》 – 본문에서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아무개 씨가 아닐세.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본문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우리는 어떠한 일을 새롭게 시작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안정과 편안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장된 평화로움의 알을 깨고 새로이 닥치는 선과 악의 세계로부터 부딪히며 헤쳐나가야 함이 있다. 그것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새로운 세계에 적응 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맞서는 것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수없이 겪게 될 세계이기도 하다. 설사 쉬운 일이 아닐지언정…

그러고보니 나는 도전 정신도 약하고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해 본 적도 없다. 기존의 안락함의 알이 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남들 보다 일찍 나의 의지가 아닌 가정의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아직 부모의 손에서 보살펴져야 하는 둥지를 깨고 나와 세계와 부딪히며 투쟁하며 살아 온 청년기의 고담함에 현재의 안락이란 알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리라.
이 또한 새로워짐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싱클레어 역시 커가면서 사춘기와 주변의 유혹들로부터 여러 경험을 한다. 하지만 성장기에 이러한 유혹과 경험 없이 어떻게 성장 할 수 있겠는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춘기에서 청소년을 거처 성인이 되는 과정이리라. 그러면서 자기정체성과 인간의 본성, 자기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가며 자아를 찾음으로서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과연 싱클레어는 진정한 자아를 찾았을까…

책을 덮고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문구들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하나 생각해 본다. 선과 악, 카인과 아벨, 압락시스(아브락시스)… 의 관한 성경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어른이 되어서 나이가 들어서 읽을지라도 한 번에 읽고 받아 들이기엔 힘들다는 거.
이 책은 꼭 한 번으로 끝내는 책이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