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김지영씨를 알게 된 건 2017년 겨울. 그때가 아직도 기억나는게 레드벨벳 아이린이 이 책을 읽는다는 얘기에 남자팬들이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변기에 버리고,

그녀의 사진을 불로 태우며 악플을 다는 등 야만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까지 난리들인가 싶어 읽게 되었다. 그때가 한창 가부장적인 상사 밑에서 일할때라 나 역시 한국남자라면 극혐하던 시기였던터라 기억이나지.

근데 막상 읽어보면 남자에 대한 얘기는 없다. 남자가 뭘 어쩌고 저째서 여자가 피해를 봤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정말 언제부터 시작된지도 모를,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를 사회적인 관습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다.

이 책에 나오는 자아가 있는 남자들은 그닥 지영씨나 다른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읽지도 않은 책 내용을 가지고들 이렇게 극혐을 하시니.. 오히려 나는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더 페미니즘 성향을 보이는 책이라 느꼈는데 그건 왜 말이 안나오는걸까?

국제적인 상을 받아서? 아니. 제목이 채식주의자라. 아마 제목이 김지영씨는 채식주의자 뭐 이런 여성성을 띄우는 제목이었다면 좀 난리가 났으려나?

이 책이 유독 난리인 이유는 제목이 팔할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좀 읽고 욕을 했으면.. 책 어디에도 남자 극혐이라는 내용은 전혀없는데 말이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한 마음이 더 외롭지.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 가혹한 세상. 모성애를 왜 이렇게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부성애를 좀 강요해주세요. 그럼 좀 성범죄가 줄어들려나. 아, 아니지 아빠라고 생각해, 내 딸같아서 라는 개같은 부성애라는 변명이 더 늘어나겠군.

 

책과 영화가 다른 유일한 점이다. 지영씨를 상담해준 의사가 책에선 남자고, 영화에선 여자라는 점. 정말 영화는 남녀의 갈등을 조장하게 위해 만든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변화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이 책을 2017년에 읽었을땐 화가 많이 났었다. 지영씨의 삶은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일들이 압축적으로 그려져있었고, 나 역시 경험해본 일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2년이 지난 2019년 영화가 개봉하고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솔직히 또 화가 많이 날 것 같아서 혼자 보던지 친구들이랑 보려고 했는데, 먼저 남자친구가 같이 보자고 해줘서 걱정했다.

혹시 보고 난 뒤에 생각이 많이 달라서 싸우거나 하면 어쩌지. 난 화가 나면 말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잘 전달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의 느낌은 화가 난다기 보다는 슬프기도 했고, 약간 해탈한 느낌? 남자친구는 역시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영화를 흥미롭게 봐줬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고 각자의 생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래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이렇게 살았고, 너넨 그렇게 산거니까 서로 존중하자.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더 피해 보는 그런 얘기를 하자는게 아니니깐. 그냥 같이 살아가자고.

영화를 본 뒤 다시 한번 더 책을 읽었다. 2년전에 읽었던 부분과 다른 부분이 좋았고, 싫었고, 슬펐다. 나중에 30대, 40대, 50대가 되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 두고두고 보면서 그땐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어! 라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