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10~80세 | 출간일 2016년 11월 30일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과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남성에 비해 엄청난 노력과 의지와 운과 재능이 필요했다.(예전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현재도 어느 정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주변의 억압과 통제와 비난을 견뎌 온 여성들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이 그냥 걸어가 움켜쥐기만 하면 되었던 투표권이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질 권리였다.

<자기만의 방>은 뉴넘 대학과 거턴 대학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발표한 강연문에 기초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 제의를 받은 어떤 가상의 인물이(아마 본인인 듯하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한 내용과 단상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하는데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강연 자체를 한 여성 화자가 겪은 이야기, 하나의 픽션으로 구성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때로는 허구와 픽션, 혹은 한 인물의 개인적 생각과 체험들이 거대한 역사나 냉철한 사실, 논리에 의거한 비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성의 존재 방식을 고찰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그녀는 남성이 남성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택한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무시와 상대적 우월감을 제시한다. 남성은 여성을 무시하고 열등한 존재라 여김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획득해 비로소 남성으로서 존재한다. 그 과정에 의해 가부장제가 탄생하고 여성의 신체적, 도덕적, 정신적 열등함에 대한 연구서적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문학 작품 속 남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여성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의 존재 방식은 애초에 모순을 품고 있다. 남성이 스스로 남성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남성성은 여성성에 대한 우월감에 의해 획득되므로 여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남성도 존재하지 못한다. 만약 남성이 여성에 관계없이 남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열등성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도 사라진다. 여성이 어떤 존재던 간에 남성은 남성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이 남성성의 획득 방식으로 선택한 불완전한 방식에 의해 여성의 열등성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그 열등성에 대한 근거로 가부장제와 수많은 연구 서적,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훌륭한 여성 문인, 연구자, 학자 등의 예시가 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이상하다. 여성이 열등하기 때문에 지금껏 위대한 여성 문인이나 학자가 없었고 가부장제가 생겨났으며 여성의 열등성에 대한 연구서적들이 쓰였다면 그것들을 여성의 열등성에 대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가? 이 말은 A라는 가설에 의해 만들어진 B가 다시 A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는 소리이다. 즉, 어떤 가설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가설의 근거로 제시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연히 틀린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다음 설명이 맞는 말일까? 이 세상에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외계인은 발견되지 않았고, 외계인이 지금까지 나타난 적이 없으므로 세상에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의 근거로 제시한 지금까지 외계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가설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즉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열등하다는 가설이 진실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말하며 여성을 억압하는 온갖 제도와 관습들이 여성이 열등하다는 환상 위에 겹겹이 쌓인 환상의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남성은 그 잘못된 환상에 매달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으므로 남성들이 주장하는 남성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이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 동안 우리의 머릿속을 장악해 온 이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우월한 남성성과 열등한 여성성은 인간의 사고와 심리 안에서 현실이 된다. 그 결과 여성은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에 의해 수많은 권리들을 빼앗기고 행동의 자유를 억압당해 왔다.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하던 당시는 여성의 열등함이라는 환상 아래 빼앗겼던 권리들을 조금씩이나마 되찾고 있던 시기였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기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으며 위대한 여성 작가와 연구자와 학자들의 선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에게 더욱 고귀하고 정신적인 여러분의 임무를 기억하라고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이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상기시켜야겠지요.’ (p.184~185)

‘젊은 여성들이여, 결론이 나오고 있으니 집중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여러분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무지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이건 중요한 것을 발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국을 뒤흔들거나 군대를 전투로 이끈 적도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여러분이 쓴 것이 아니며, 여러분은 야만인들에게 문명의 축복을 전달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릴 것입니다. 1866년 이래 영국에는 여성을 위한 대학이 적어도 두 곳 존재해 왔으며, 1880년 이후에는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었고, 1919년 – 꼭 구 년 전의 일인데 – 에 여성은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전문직이 여러분에게 개방된 지 대략 십 년 정도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릴까요? 여러분이 이 막대한 특권들과 그것들을 누릴 수 있었던 기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이 순간에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연간 500파운드 이상을 벌 수 있는 여성이 약 이만여 명 있다는 사실을 숙고해 본다면, 기회가 부족하고 훈련이나 격려를 받지 못했으며 여유와 돈이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할 겁니다.’ (p.187~188)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말한다. 모든 인간들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환상으로 인해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사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 권리들을 위해, 남성의 비교대상으로서가 아닌 그저 한 개인이자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이다.

또 한 가지,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하는 것은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 파운드의 수입이다. 그 두 가지가 있어야만 여성이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세속적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그 두 가지는 사실 단순한 단어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써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적인 관점으로 존재했다. 여성 자체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일컬어진 시대인 것이다. 그런 시대에 여성에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공간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신, 남성에 대비되는 열등한 존재로써의 자신을 끊임없이 인식시키는 공간이다. 울프는 남성에 의해 규정되는 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힘으로 연간 500 파운드를 벌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없으면 인간은 결국 누군가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 한 주체로써 홀로 서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을 울프는 연간 500파운드로 보았던 것이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p.180)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누군가와의 비교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홀로 서지 못하는 현실이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여성에게는 훨씬 더 가혹하고 무자비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남성의 발목 또한 붙잡고 있다. 남성이 여성과 비교한 우월성으로 정의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성성의 비교 대상으로써의 남성성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으로 일컬어지는 어떤 성질)을 일부러 외면하고 숨겨야만 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자신으로써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이 남성의 비교 대상이자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하나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남성 또한 여성성에 대비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남성성, 그 단단한 족쇄를 풀고 자유로운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성을 다른 성에, 한 가지 자질을 다른 자질에 대립시키고 우월성을 주장하며 열등함을 전가하는 모든 행위들은 인간의 경험을 단계로 나누자면 사립학교 단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양편’이 있으며, 한편이 다른 편을 이겨야 하고, 연단에 올라가서 교장 선생님이 직접 주는 화려한 장식의 상배를 받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 보이지요. 사람들은 점차 성장하면서 양편이라든가 교장 선생님 혹은 고도로 장식적인 상배를 믿지 않게 됩니다….. 아니,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아무리 즐거운 소일거리라 하더라도 그것은 더없이 무익한 일이며, 가치를 측정하는 사람들의 규정에 복종하는 것은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p.177)

이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또 그만큼이나 이 세상의 모든 남성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 속 한 문장

‘이 강연의 중간에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고 여러분에게 말했지요. 그러나 시드니 리 경의 시인전에서 그녀를 찾지 마십시오. 그녀는 젊어서 죽었고, 슬프게도 글 한 줄 쓰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엘리펀트 앤 캐슬 맞은편 버스가 정류하는 곳에 묻혀 있지요. 이제 나의 신념은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교차로에 묻힌 이 시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러분 속에 그리고 내 속에, 또 오늘 밤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이곳에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속에 살아 있습니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