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제목부터가 자극적이다. 한국이 싫어서. 20대 후반인 여자 주인공이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가벼운 문체로 쓰인 소설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롭고 무겁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계나는 한 금융회사 신용카드팀 승인실에서 근무하다 삶의 의미를 도저히 찾지 못하고 한국이 싫다는 이유로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주변에서 외국병 걸렸다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과 가지 말라고 말리는 가족과 남자 친구를 뒤로 하고 호주로 떠난 계나는 혹독한 현실의 벽과 마주하며 여러 고난을 겪는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힘들어서 온 호주였지만 이 곳도 그녀에게 쉽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같은 처지의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방 하나에 세명씩 사는 닭장 셰어를 하며 생계유지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서히 호주라는 곳에 적응해 나간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와 닭장 셰어를 견디며 어학원을 졸업하고 회계학 대학원에 입학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계나에게 한국에 있는 전 남자 친구가 연락을 한다.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사이 그에게 프러포즈에 가까운 고백을 받은 그녀는 호주와 한국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다시 호주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20대 후반 직장 여성 계나의 시선에서 쓰인 소설이고 남자와의 만남에서 느끼는 그녀의 감정이나 여성들만의 이야기, 그리고 20대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서 전혀 어색한 부분이나 위화감 없이 그려져 있기에 당연히 작가가 20대의 여성일 줄 알았는데 웬걸, 장강명 작가는 75년생의 남자 작가였다. 그것만으로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사전조사와 취재를 진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20대 후반의 주인공은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현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몇 년 동안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고 취직에 성공한 젊은이들조차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회사의 현실과 이틀에 한 번은 해야 되는 야근, 회식에 치여 살고 있지만 먹고 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마 때려치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모든 젊은이들은 아니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그런 젊은이들 중 대부분은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다 때려치우고 외국으로 떠나고 싶다고. 하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현실의 많은 젊은이들과 달리 소설의 주인공 계나는 훌쩍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호주로 떠난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또 어찌 보면 무모하다.

그러나 외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높은 장벽에 부딪힐 뿐.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외국인 신분으로 법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문화 차이는 물론이고 갓 호주에 온 유학생 신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서비스직과 같은 아르바이트뿐이다. 하지만 계나는 열심히 호주 사회에 적응해나간다. 호주에서는 아르바이트밖에 못하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고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은 그렇지 않다.(적어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낀다.)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많은 젊은이들은 느끼고 있고 쥐꼬리만큼 오른 최저임금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 당장 내일 뭘 먹을지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는 나라로 가고 싶어 하고,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대가는 받을 수 있는 나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세대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을 안 한다,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노력을 해도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든 하지 않든 생계를 걱정해야 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노력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계나는 한국에 들어왔다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다시 호주로 떠난다. 첫 번째 호주행은 한국이 싫어서였다면, 두 번째 호주행은 자신의 행복을 호주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호주를 낙관적인 기회의 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의 입장으로써 한국보다 더 냉혹하고 적응하기 힘든 곳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국과는 다른 점이 있다. 방송 기자나 버스 기사나 월급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점. 아르바이트로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점. 계나는 호주에서 겪은 외국인으로서의 진입장벽과 수많은 위기들에도 다시 한번 한국을 떠나 호주로 향한다. 현재의 20대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안전장치. 그것만 해결된다면 젊은이들의 많은 걱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소설은 왜 지금의 젊은 세대가 한국을 싫어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준다. 한국 사회를 무작정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들만 고친다면 정말 좋은 사회가 될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대입하면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생각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만한 소설이다. 장강명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그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