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달고 차가운/오현종]

연령 17~60세 | 출간일 2013년 7월 26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입시에 실패했다. 아니, 사실 실패한 건 아니었다. 다만 붙은 대학이 부모의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었을 뿐이다. 고위 관직자였기에 엘리트를 노래했다, 부모는. 그들의 뜻에 따라 재수를 하게 됐다. 사는 게, 밥 먹는 게, 숨 쉬는 게, 존재 자체가 눈치 보일 때,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재수학원 옥상에서 그 아이를 보았다. 진신혜, 그 아이를. 가장 나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삶, 아닐까.

타일 바닥을 밟는 소리가 아작, 하고 단호하게 들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나갈 수 없음을, 모든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확연하게 되었다. 스산한 밤을 노렸다. 사람을 죽이려고. 이건 아주 계획된 범죄였다. 사랑하는 상대 진신혜에게 분홍 구두를 신긴 사람에게 강지용은 대신 복수를 했다. 진신혜가 선물한 이어폰은 어딜 가나 강지용과 함께였다. 심지어 그 살인 현장에도. 부모의 뜻대로 결정된 미국 유학길이었고, 떠나기 직전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분홍 구두의 흔적을 없앴다. 직접적인 연락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지.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는걸. 죽느냐 죽이느냐, 둘 중 하나였으니까.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무도.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고, 손에는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았다. 깨끗했다. 진신혜와는 오직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글을 남기며 소통했다. 하지만 강지용이 살인을 한 뒤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진신혜와의 연락이 두절됐다. 아예 글조차 올라오지 않는다. 글을 하나씩은 남기곤 했던 진신혜라 걱정이 되기 시작한 강지용. 부리나케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강지용을 맞이한 건 진신혜가 아니라 없는 번호였다. 사라졌다, 감쪽같이.


속고 속이는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리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나름 비슷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과 차이가 있다면, 바로 <달고 차가운>엔 수없이 많은 반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다들 지옥에 있다고 하지. 모두 너 때문에 내가 지옥에 있다고 욕하는데, 너 역시 지옥에 있다고 아우성을 쳐. 그러면 이게 다 누구 책임일까. 강지용은 자신이 민신혜를 지옥에서 건져준 영웅이라 생각했다.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늘상 화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패작인 자신을 지워버리려 하는 부모에게 오만 정을 다 뗐다. 분풀이를 민신혜의 분홍 구두를 신긴 사람에게 했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착각은 자유였다. 민신혜를 지옥에서 건지키는커녕, 민신혜는 강지용을 지옥으로 끌어들였다. 바닥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바닥이 있었다. 밑바닥에서 강지용은 자신의 추한 욕망을 마주한다. 잔인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제대로 된 추악함의 끝을.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들키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 되지 않을 일들이었다. 그냥 지나갈 일들이었다.

난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새드엔딩이어도 그 이후에 그려지는 미래가 행복하다면, 더 나은 무언가가 보장돼 있다는 듯한 암시가 보인다면 만족하는 편이다. <달고 차가운>은 색깔로 표현하자면 암흑이다.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며 사랑으로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끊임없이 추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해피엔딩을 지향하고 사랑하는 내 상상 속에서조차도. 그래서 더 암울했다. 악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내 답 또한 못 찾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