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대하고 게으르게/문소영]

문소영
연령 8세 이상 | 출간일 2019년 6월 15일

방황할망정, 느릿느릿 갈망정, 그냥 늘어져 있어서는 안 되는구나. 뭔가를 끈질기게 하며 게을러야지, 무기력하게 게으른 건 안 되는구나, 죽기 전에 한번 꽃펴 보려면. ‘지적인 예술가’, 이것이 바로 <광대하고 게으르게>의 저자인 문소영에 대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예술이 일상이고 글 쓰기가 직업인 여자”답게 그의 글에선 지적인 미가 뚝뚝 흐르다 못해 넘쳐 흘렀고, 난 그게 좋았다. 이따금 전시회에 방문하면서 개인적인 관심을 갖게 된 예술가들과 일상에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도, 예술적인 감각과 버무려 사회의 냉소적인 면까지 모두 아우르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완벽할”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게으르게”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그는 인간적이기까지 했다. 하여튼, 작가 문소영은 무척 멋졌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내 인생을 이루게 되는 것도, 이 선택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선택을 더 두렵게 만든다. 끝없는 악순환의 반복 결과는, 결국 체념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감정들을 고백하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작가는 선택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당연하다고 나를 감싸줬다. 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단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내가 밟지 않은 낙엽이 소복이 쌓인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숙명적인 동경과 아쉬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라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런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것을.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나를 판단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고 느낀다. 타인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처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참 오묘했다. 내가 그렇게 줏대 없는 사람이었나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세상이 말하는 판단 그리고 가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심은 말 그대로 ‘결심’에서 끝나곤 했는데, 이러한 순간마다 필요한 것은 <광대하고 게으르게>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던 스티븐 잡스의 명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여러분의 시간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세요.


어떤 한 인간에 대해서,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우리는 순간적으로 얼마나 주관과 편견이 많이 섞인 의견을 갖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인가? ‘지적인 예술가’ 문소영의 글을 통해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생각보다 살 만한 곳이었다. 물론 불편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100점 만점의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작가와 같이 왜곡되지 않은 현실을, 그 민낯을 함께 바라보고 유쾌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살만 한 곳’이라고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원샷원킬,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나에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가에게만큼은 예외다. 작가 문소영처럼, 나도 한 번 “광대하고 게으르게”, 때론 불편하게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가 <광대하고 게으르게>에서 시범 삼아 보여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