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공원의 간이 주차장, 홀로 삐뚤게 세워진 고급 승용차, 그 안에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여자. 도경은 밀랍 인형 같은 수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보았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수상하고 섬뜩한 배경에서 모든 일은 시작됐다. 아니, 사실은 30여 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일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날 그 차 안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한 사람이 각성했고, 약하지만 확실한 몸짓으로 고치를 찢고 나와 나비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선명한 노란색. 활짝 편 양 날개 위에 눈동자처럼 동그랗게 소용돌이치는 검은 무늬를 가진 ‘나비’가 되어.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이 ‘나비’가 ‘사하’라는 것이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고 불리었다.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 “거대한 기업인지 국가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국가”, 일명 ‘타운’은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다. 그곳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다.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주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L-들과 체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L2-,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진경은 L에도, L2에도 포함되지 않은 ‘사하’였다. 다 쓰러져가는 맨션 ‘사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다 ‘사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사하’, 너희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엄마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사장을 죽인 동생 도경을 살리기 위해 본국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타운으로 숨어들어간 진경과 도경 남매. 하지만 타운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상당히 이상한 도시국가였다.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가 있었고 읽을 수 없는 책이 있었고 걸을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이상한 일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상식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상식을 의심해야 했다. 너무도 이상한 일이 당연시되는 수상한 도시국가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하맨션의 ‘사하’들. 사랑하는 동생 도경을 포함한 많은 ‘사하’들이 곁에서 사라지자 진경은 모두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나방이 되었다. 불타는 타운의 중심으로 외로이 날라 가는, 나방.


아가미가 없는데 물속에서 살 수는 없잖아. 그 물이 설사 깨끗하고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해도 그런 거잖아. 아예 못 사는 거잖아. 밖에서 보았을 때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타운 그리고 주민들. 이와 대조되는 사하맨션에 사는 ‘사하’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 <사하맨션>. 디스토피아적인 도시 그리고 나라들의 이야기는 소설책에서도 꽤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다. 재미있게 읽었던 <다이버전트> 시리즈나 <기억전달자> 배경도 역시 디스토피아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유토피아’라는 것. 실상은 디스토피아라는 것도 똑같다. <사하맨션>이 다른 책들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 <사하맨션>의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닌 모든 ‘사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움직임으로 ‘나비’가 되었다는 것도.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3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사하’에서 온 나방들의 날갯짓은 때론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꺾였다. 타운 권력의 핵심들은 꺾이고 부러지고 다친 나방들은 다시 날아오를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진경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나방인지 나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그리고 그 움직임이 고치를 찢고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사하맨션>은 암시하고 있다. 시발점이 나비였는지 나방이었는지, 사하였는지 타운 주민이었는지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단지 고치를 찢고 나왔다는 것, 나비인지 나방인지 모를 그 존재의 날갯짓에 응답했을 거라는 확신,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