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끌어올리는 발언권

출간일 2008년 10월 10일

p197

나는 사물의 존재만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다. 언어를 통해서 그것을 꼭 만들어 놓고 말리라. 동시에 나는 언어만을 사랑하는 수사학자이기도 하다. ‘하늘’이라는 말의 푸른 눈 아래로 언어의 대사원을 세우리라. 수천 년의 미래까지 견디는 대사원을 세우리라······. 책은 손에 들고 수십 번이나 열고 닫고 해 보아도 통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텍스트’라는 불후의 실체 위를 스치는 내 시선은 표면에만 머무는 하찮은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텍스트를 어질러 놓을 수도 없고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없다. 나는 다만 수동적이며 덧없는 존재다. 나는 등불을 함빡 쬐어 눈이 부신 모기일 따름이다. 나는 서재에서 나오며 불을 껐다. 그러나 어둠 속에 묻힌 책은 여전히 번쩍이는 것이었다. 오직 저 자신만을 위해서. 나도 내 작품이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이런 강렬한 불빛을 지니게 하리라. 그리고 후일 그 작품들은 허물어진 도서관에 간직되어 인간들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으리라.​

#번역하는문장들 을 보면 #예상표절 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과거의 작품이 현재의 작품을 표절한다는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인데 ㅡ 번역의 영역을 재해석, 재창조에까지 확장하는 의미에서 다뤄진 게 아닐까 싶었고, #사르트르 뿐 아니라 자신의 자서전을 자신의 작품 생활을 두루 다루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으로 기능하게 하려는 작가들의 의도적인 활동 전반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써놓고 이게 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과거 작품에 작용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자서전을 통해 생산함으로써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가 지배하는 회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발언권을 획득하게 된다.

p.s. 이 책이 나온 196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수상을 거절한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