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언제부터인가 ‘맘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움에도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기 좋을대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엄마들. 새로이 등장한 신조어는 곧 ‘노키즈존’이라는 한 집단을 완전히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점점 어린아이와 엄마에게 냉혹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럼 아빠는? 다른 진상들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면 ‘맘충’이라고 비난받지만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일과 가정 모두를 챙기는 참된 사람’, 또는 ‘부성애가 있다’며 칭찬받기 일쑤다. 황당한건 이 뿐만이 아니다. ‘진상’의 종류에는 비단 ‘맘충과 어린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턱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영업방해를 하고, 말도 안되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손님이 왕인줄 아는 자들. 왜 그 사람들을 막는 ‘노진상존’은 없는건가.

워낙 많이 알려졌고, 얼마전엔 100부를 찍었을 정도로 저명한 책이지만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편협한 시선을 가지게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쓸모 없는 걱정이었다. 이 책에서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적어냈다.

나는 고등학생이다. 강산이 수 번 변한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여성 반장, 대표가 자주 보이고, 겉만 번지르르할지라도 여성을 위한 정책도 조금씩 생겨나고있다. 그럼에도 나의 세대에게서 ‘김지영’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당장 우리 학교를 보더라도 여전히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출석번호가 빠르다.

체육시간에도 농구•축구•발야구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는 남학생과 다르게 여학생에게 주어진건 피구공 하나다. 체육을 정말 싫어하는지라 피구공조차도 주지 않았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늘상 불만섞인 말을 뱉곤한다.
내가 졸업 하고 나서, 다니던 중학교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다. 더이상 출석번호 앞자리를 남학생이 독차지 하지 않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매년 번갈아 가며 출석번호를 정한다는 것이다. 남녀분반이었던 작년을 제외하면 나는 지난 9년간 모두 남학생이 앞번호인 교실에서 생활해왔다.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속에서 열불이 났다. 나는 왜 이걸 당연하게 여겼을까. 당연할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만 되는 줄 알았던 김지영씨는 왠지 말도 안되는 소리같아 웃어버렸다. -36p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41p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에게도, 끝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의식과 자신감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 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 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줄로만 알고살듯이. -46p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1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