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마, 취하지마

응보라든지 벌이라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가치의 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것을 포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또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얻기 위해 나를대로 값을 치렀고, 그래서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들에 관해서 배운다든지, 경험을 한다든지, 위험을 무릅쓴다든지, 아니면 돈을 지불함으로써 값을 치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의 모습을 배경으로 30대 중반의 미국인 제이크 반스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흐른다. 제이크는 전쟁에 참여 했다가 부상을 당해 입원했었다. 병원에서 영국인 브렛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전쟁의 부상으로 인해 두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브렛은 마이크 캠벨과 약혼을 하게 된다. 제이크의 문학동지이자 친구인 로버트 콘 또한 브렛에게 빠져 주위를 맴돌게 된다. 그리고 또 한명의 미국 작가 빌 고턴과 브렛, 마이크, 로버트는 스페인의 축제와 투우를 즐기게 된다. 술과 열기속에서 축제는 무르 익어 가지만 브렛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와 로버트 아슬아슬한 긴장감 또한 이어진다. 브렛도 제이크를 사랑했고 제이크 또한 브렛을 사랑하지만 그 둘은 그저 이 상황을 지켜만 볼 뿐 스페인의 투우 축제는 흐르고 있다.

종전 이후 파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고국을 떠나 생활하던 예술과와 지식인들의 중심이었으며 새로운 가치와 자유에 대한 갈망하며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의 공허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었다. 시대의 우울을 ‘세계의 교차로’라 불리던 파리에서 온몸으로 겪어 낸 청년 시절의 헤밍웨이는 자신을 비롯해 주변인들의 경험을 한 편의 소설 속에 녹여 내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완성 시켰다. 이 책을 통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삶의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 즉, ‘잃어버린 세대’들을 대변하고 투우사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새롭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더이상의 나아갈 삶이 없는 사람들처럼…. 소설의 후반부에서 젊은 로메로와 떠났던 브렛이 로메로를 떠나보내고 다시 제이크를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브렛은 제이크에게 되풀이 되는 말을 한다. ‘취하지 마, 제이크. 취하면 안 돼.’ ‘취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취하지 마. 제이크, 취하지마.’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독자들에게 이 불안한 시대에 존재하던 그들에게, 그리고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성을 잃지 말고 삶의 가치, 자신의 가치를 찾아 새로운 길을 향해 가라는 응원의 메세지 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