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찬가

p.13

이 시기에도 빵을 구하려는 줄은 종종 수백 미터씩 늘어서곤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

실업은 없었다.

생활비는 여전히 매우 낮았다.

눈에 띄게 곤궁해 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시를 제외하면 거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이발소에 가면 이발사들이 이제 노예가 아니라고 엄숙히 천명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벽보가 붙어 있었다.

 

p.21

그러나 나처럼 스페인 노동계급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려본 사람들은 그들의 타고난 품위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솔직함과 관대함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 사람의 관대함은 때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이다.

담배를 한 개비 달라고 하면 한 갑을 억직로 떠안긴다.

또 이런 흔한 의미의 고나대함을 넘어서는, 더 깊은 의미의 관대함이 있다.

영혼의 웅대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이다.

 

p.59

인민전선 정부는 정당 의용군들로 하여금 소리치며 선전을 하게 함으로써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새로운 정규전술을 개발해 놓았다. 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임무를 맡기고 확성기도 주엇다.

보통 그들은 틀에 박힌 내용을 외쳐댔다.

혁명적 정서가 가득한 내용이었다.

피시스트 병사들에게, 너희들은 국제 자본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의 계급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우리편으로 넘어올 것을 촉구하였다.

 

 

이따금씩 그는 파시스트들에게 혁명적 구호를 외치는 대신,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인민전선 정부가 배급하는 식량을 이야기할 때면 상상력을 약간씩 가미하곤 했다.

‘버터 바른 토스트!’

‘우리는 여기 앉아서 버터 바른 토스트를 먹고 있다!

버터 바른 토스트들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너희도 알지!’

 

p.63

이어 점차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군이 총 한방 안 쏘고 도시에서 철수했다는 것,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싸울 상대가 사라지자 가엾은 민간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것,

그들이 민간인 가운데 일부를 백오십 킬로미터나 쫓아가 기관총으로 사살해 버렸다는 것 등등 말이다.

그 소식을 듣고 전선 전체에 냉기가 흘렀다.

사실 여부야 어쨌든 간에, 의용군의 모든 병사는 말라가를 잃은 것이 배반 행위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배반이니, 분열된 목표니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이 전쟁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생겼다.

그전까지만 해도 옳고 그른 것이 아름다울 정도로 명쾌해 보였는데, 이제는 달라진 것이다.